[목사] 고아들의 벗, 사랑과 청빈의 성직자 황광은  목사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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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 2> 

한국보육원과 김유선 여사 ③

제주읍에서 이화시절 친구들 만나

피난 생활 중에도 보람된 삶 찾아 

한국보육원에서 어린이들과 새 생활

우연히 일생 함께할 황 목사 만나

그때 그 평화스럽던 마을에 몇 사람의 희생자가 생겼고, 소와 식량을 빼앗겼고, 마치 불한당을 만난 것처럼 살벌한 마을로 변해버렸다. 그 일이 생긴 며칠 뒤에 우리는 그동네를 떠나 제주읍으로 이사해 가게 되었다.

제주읍에서 나는 이화시절에 기숙사에서 신앙으로 깊이 사귀고 지내던 친구 원화와 보영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각각 과는 달랐지만 기숙사 생활을 함께 했을 뿐 아니라, 학교 YMCA 간부로 주일학교 선생으로 사귄 친구들이라 보통 우정 이상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기뻤는지, 얼마나 감사했는지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서 깡충깡충 뛰었다.

우리는 눈만 뜨면 함께 만나고 이야기하고 부두를 산책하며 피난 생활의 외로움을 서로 달래며 지냈다. 나랏일을 근심해 보기도 하고 친구들의 이야기도 해가며, 옛날 학창 시절과 마찬가지로 꿈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렇게 시간을 흘려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피난 생활 중에도 무언가 보람된 삶을 찾을 수 없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봉사는 없을까? 그런 어느 날 우리는 우연히 제주농업중학교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보육원에 가서 구경할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교육부장 황광은 선생

한국보육원에는 전쟁고아들만 800여 명에 직원이 200명 가까이 되는 1천 명의 대가족이 살고 있었다. 어린 영아로부터 시작해서 큰 학생까지 방마다 옹기종기 모여 생활하고 있는 광경을 바라다 보는 순간 우리는 모두 같이 마음에 뜨거운 충동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피난 생활을 하는 동안 무의미하게 허송세월을 할 것이 아니라 이 어린이들과 같이 살 수 없을까? 누군가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정말 우리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어린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그 즉석에서 원장 어머니 황온순 여사를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여기에 와서 일해보고 싶다고 청을 드렸다. 원장 어머니는 첫 마디로 쾌히 승낙해 주셨고, 우리는 그날로 한국보육원에 들어갈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우리들의 짐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 보육원에서는 드리쿼터차 한 대를 보내주었다. 그 차에는 한 젊은 선생이 타고 와서 짐 싣는 일을 도와주었다. 우리는 그 젊은 선생과 서로 눈인사만 간단히 나누었을 뿐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어린이들과의 새 생활을 상상해보면서 보육원을 향해 갔다.

기독교 사회사업과를 졸업한 원화는 학창 시절에 고아원을 몇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었으나, 보영이와 나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고아원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 동기가 이대를 졸업하게 될 때 기숙사 동생들이 송별회를 열어 주었던 일이 있었다. 그날 순서 가운데 ‘10년 후’라는 제목으로 영문과 동생들이 연극을 꾸며서 보여 주었는데, 같은 학창에서 같이 배우고 같이 즐기던 친구들이 졸업해 각각 흩어졌다가 10년이 지난 어느날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변해 서로 만나는 장면을 그린 토막극이었다.

그때 2년생이었던 남경이가 까만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농촌 지도하는 여성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나중에 그는 내게 말하기를 유선 언니를 상상하면서 자기는 그 역을 했다는 것이었다. 하급생들이 왜 나를 그렇게 보아 주었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당시 나는 기숙사에서 기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밖으로 뛰어나가 뒷동산에 올라가는 버릇이 있었다. 300여 명 학생 가운데 새벽에 산책을 즐기고 고요히 기도드리는 시간을 찾는 학생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았었다. 나는 그런 시간을 가질 때마다 나의 앞날을 하나님께 부탁드렸고 또 앞날을 지시해주시기를 간구하곤 했었다. 내가 한얼중학교로 첫 발을 옮기게 된 것도 그런 시간에 어떤 힘에 이끌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고아원에서 생활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것은 나의 의지도 아니요 피난 생활에서 생긴 우연의 기회였다. 그런 우연한 기회에 나의 일생을 같이 할 황 목사를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던 일이었다.

우리는 사무실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우리를 안내하러 나왔던 그 젊은 선생이, 여자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그 젊은 선생이 바로 한국보육원의 교육부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희보 목사

· ‘人間 황광은’ 저자

· 전 장신대 학장

· 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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