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비사] 한국인의 세계적 기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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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이 공산국가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떻게 중국이 공산화되었는가? 한국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워졌는가? 여러 각도에서 대답이 있을 것이다. 목사요 신학자의 눈으로 보면 여기에는 완전한 영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가톨릭은 그만두고 개신교만 하더라도 한국보다 팔십 년보다도 훨씬 전에 중국에 전해졌으나 중국의 복음화 속도는 지지부진했다. 1949년 중공이 설립될 때 중국의 개신교 인구는 70만 정도였다. 그것도 공산국가가 설립되자 40만 정도는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교회를 떠났다. 30만이 남았다. 공산주의 무신론을 이겨낼 복음의 힘을 거대 중국은 갖고 있지 못했다. 복음을 온전한 복음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중체서용으로 본체인 종교는 그대로 중국의 것을 유지하되 문명의 쓰임만 서양의 것을 채택한다는 그들의 자세가 중국의 복음화 속도를 지연시키고 있었다.

또 중국은 오랜 유교 전통의 지배를 받던 나라이다. 유교는 바로 공산주의와 통한다. 기독교에는 있는데 유교에는 없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과 낯선 타인이다. 유교의 강령은 삼강오륜으로 요약된다. 다섯 가지 인간관계가 화평하면 거기 구원이 있다고 본다. 부자, 부부, 군신, 장유, 붕우의 관계이다. 이 다섯 관계의 특징은 다 내가 거기 포함되어 있다. 나랑 직접적으로 관계된 상대방과 평화가 이루어지면 그것이 구원이라고 본다. 하나님도, 원수도 없다. 한마디로 하면 인본주의이다. 인본주의의 가장 극대화된 형태가 바로 공산주의이다. 중국의 공산화는 복음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물론 인본주의 유교와 인본주의 공산주의가 서로 일맥상통하기에 마땅한 결과였다.

2. 대한민국은 복음 위에 건설된 국가

그러나 한국은 달랐다. 한국은 기독교 복음으로 신생한 기독교 강국이다. 세계인이 그렇게 환호하고 있었다.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일본이 거대한 군사강국으로 등장하던 1907년 정월 평양에 성령대강림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에 성령의 불폭탄이 떨어졌다. “기독교가 한국을 새롭게 주조하고 있다.” 뉴욕타임즈 엘리스 기자의 말이었다. “지금 세계에는 두 강대국이 있습니다. 하나는 군사강국 일본이요 하나는 기독교강국 한국입니다.” 세계 교회의 증언과 소망이었다.

한국, 기독교강국 한국, 중국과 러시아를 무찌른 일본도 어찌할 수 없는 기독교강국 신생한국! 이 한국이 일제시대를 거쳐 미국이 일본을 굴복시킴으로써 얻은 해방을 거쳐 1948년 8월 15일 마침내 자유대한민국으로 건국되기에 이르렀다. 국회 속기록 첫 장이 주님께 드리는 감사기도로 되어 있는 이 나라, 애국가가 찬송가로 되어 있는 이 나라, 국화가 바로 샤론의 꽃 예수 무궁화인 이 나라, 이 나라가 어떻게 이런 복을 받게 되었는가. 바로 기독교 복음의 힘이었다. 중국과 달리, 일본과 달리, 복음을 온전히 복음으로 받아들인 우리 대한민국은 온통 공산주의로 유라시아가 물들어가던 그때, 기독교 입국론,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의 국가로 건국되게 된 것이다.

류금주 목사

<전 서울장신 교수·현 청교도신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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