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04돌 삼일운동과 오늘의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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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삼일운동 104돌이 되는 해이다. 100년 전에 비해 오늘날 한국은 식민지 시대는 아니지만 국제적으로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100년 전보다는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루었지만, 사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경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에 있다. 100년 전처럼 외세에 의한 무단통치 시대는 아니지만 권력에 대한 공포가 여전하며 권력 앞에 백성들은 눈치를 보아야 하는 현실이다. 100년 전처럼 총칼에 대한 위협은 없지만 핵전쟁의 위험이 도시리고 있다. 100년 전처럼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는 없지만 여전히 권력형 부정부패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100년 전에는 국민이 존경하고 의지할 국가적 지도자가 있었다. 조만식, 김구, 안창호, 이승만, 이상재와 같은 민족 지도자가 있어 백성들은 일제 강점기에도 삼일운동을 거사할 수 있었다. 교회도 100년 전에는 숫자는 적었지만 존경받는 성직자가 있었다. 길선주 목사를 비롯해 양전백, 주기철, 손양원 목사가 있어서 교인들은 행복했다. 김익두 목사, 이기풍 목사, 최권능 목사, 이성봉 목사를 통해 회개하고 예수 믿고 병이 나은 사람도 많지만, 각성하고 민족 지도자가 된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이승훈 장로였다. 그를 통해 오산학교가 세워지고 많은 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 이 학교에서 조만식 장로가 나오고, 주기철, 한경직 목사가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시인 김소월도 민족 시인으로 성장했다. 

이제 생각해보자. 100년 전과 비교해 지금의 교회는 어떻게 달라졌고 무엇을 반성해야 할까? 오늘날의 교회는 존경받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100년 전의 길선주 목사가 오늘날 보이지 않는다. 양전백, 주기철, 손양원 목사를 볼 수 없다. 100년 전의 이승훈 장로를 찾아 볼 수 없다. 조만식, 이상재 장로가 교회에 없다. 목사도 장로도 아니었던 평신도 안창호와 같은 인물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비극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뛰어난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내로라하는 부흥사들이 넘쳐난다. 세계적인 석학을 자랑하는 신학자들이 즐비하다. 사회적 정의의 외치는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크다. 그러나 한국교회에 존경받을 만한 지도자가 없다.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각 악기마다 뛰어난 연주자는 많은데, 이를 모아 하나의 하모니로 조화시킬 수 있는 지휘자가 없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오늘날 교회는 인물을 길러야 한다. 100년 전의 교회처럼 민족의식이 갖추어진 진실된 신앙인을 길러 사회에 배출시켜야 한다. 교회는 이 시대의 느헤미야와 에스더를 길러야 한다. 예레미야와 모세와 엘리야와 다니엘 같은 인물을 키워야 한다. 100년 전의 길선주와 이승훈 같은 인물을 길러야 한다. 인물이 나오면 비난하고 모함하는 못된 풍토를 개선해 인물됨이 보이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세워주고 인물이 되도록 도와서 애국자로 나라를 구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목회의 목적이 되고 교회의 사명이 되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의 내용에 삼일정신의 흔적이 있는가? 한국교회가 추구하는 목회 비전에 민족지도자를 길러내겠다는 결단이 있는가? 열심히 심방하고 회의하고 교회학교 교육을 하고 친교하고 전도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 물음에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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