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베사메무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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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음악회에는 가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리 새며느리가 평생에 보기 어려운 유명한 이태리 가수들이 노래하는 밤이니 가보시도록 하시라고 권했더라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았어야 했다.

하긴 단지 그말 한마디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번 회갑날에 하객들의 특청을 받고 불렀던 ‘산타루치아’는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는 새며느리의 말에 그만 홀딱해서 맞장구를 친게 결정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내가 이래봬도 중학교 때에는 음악시간이면 한가닥 잡았었지.” “지금도 아버님 음성은 너무도 고우세요.” 

음대 성악과 출신의 새며느리 말이니 설사 시아버님이라서 좀 과장을 했다손치더라도 전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리라는 자부심에 그만 냉큼 대답을 하고 만 것이다.

세종회관은 온통 청중들로 자리가 꽉 들어차 있었다. 좌석표 번호대로 안내원을 따라서 가보니 아들과 새며느리와 그리고 그 옆이 바로 덕수의 자리였다.

“얘야! 네가 이 자리로 오는 게 좋지 않겠니? 통로쪽보다는….” “아니에요, 아버지. 전 알고 있는 곡목이거든요. 해설을 들으시려면 이렇게 앉는게 좋아요.” 덕수는 할 말이 없었다.

음악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해설을 들려준다는 바람에 벌써 당혹감이 들기 시작했다. “야, 이녀석아 누가 해설을 듣자고 했어?” 이태리가곡이라면 안다는건 고작 ‘산타루치아’와 ‘오 쏠레미오’ 뿐인데 해설이라니 그야말로 당치도 않는 말이다.

그런데다가 프로그램을 보니 한곡에 5분씩만 치더라도 열곡이 넘으니 그것만으로도 한 시간은 족히 될 것이고 여기에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어 쉬는 시간이 있겠다 지휘자 반주자의 등단과 하단 그리고 인사하고 박수치다 보면 두 시간은 넉히 걸릴 것이다.

‘아는 노래라곤 한곡도 없구먼. 단단히 곤욕을 치루겠는걸’ 차라리 마누라처럼 위신이고 체면이고 탁 접어두고 편한대로 할 것을 백번 잘못했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화인이 되려면 이태리가곡도 들어봐야 하는거요.” “전 싫어요. 뭣 때문에 비싼돈 주고 모르는 노래를 들어요? 난 집에서 연속극이나 볼테니 어서 애들하고 다녀 오세요.”

덕수는 마누라의 말을 되새기며 얕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금 무대쪽을 바라다 보았다. 애기로 말한다면 우량아처럼 생긴 중키의 남자가수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물이 흐르듯 거칠 것 없이 매끄러운 소리가 마치 딴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도 보는 것처럼 온 청중들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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