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비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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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졸립다 졸립다 해도 이렇게도 졸리울 수가 있을까. 허벅지를 꼬집고 혀를 물어도 그 순간만 반짝하고 눈이 뜨일 뿐 또다시 천근같은 무게로 눈꺼풀이 덮여온다. 그래도 장교후보생들이야 듣건 말건 아랑곳없이 일사천리로 주워 넘기는 박격포(迫擊砲) 교관의 강의는 두리뭉실 자장가로 둔갑해 소나기잠만 쏟아지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래서 순호가 며칠 새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것이 바로 사탕과자 ‘비가’였다. 수업시간에 정 졸리워 못견딜 지경이면 수단껏 입안에다 비가를 넣는다는 것이다. 그 이치는 간단했다. 아무리 졸립다 하더라도 사탕을 빨아 먹으면서까지는 졸지 않는다는 것을 착안한 것이다. 

문제는 수업시간에 비가를 먹는다는 게 우선 규정에 걸린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탕을 먹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잠을 쫓아 내고 공부를 하겠다는 것이니까 그다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자위(自慰)에서 가책은 덜했다.

군이란 생리가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힘의 집단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해도 정도 나름이지 먹어 불어오른 베니어 바닥을 윤이 나도록 닦으라든가, 내일 아침까지 쥐를 두 마리 이상 꼭 잡으라든가 하는 따위는 어거지가 아닐 수 없었다.

이중에 5분내 공부를 하도록 하는 것도 역시 여기에 속하는 하나의 어거지다. 뜨거운 태양 아래 반합뚜껑에다 받은 늙은 호박국과 바로 퍼올린 뜨거운 밥을 5분내로 먹으라니 거기에다 식사를 마치면 M1총을 들고 십리가 훨씬 넘는 야외교육장까지 뛰어 가라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뛰면서 구호인지 발악인지 알 수 없는 군가를 목소리를 다해 질러대며 뛰는 것이다. 숨은 하늘에 닿고 옷은 땀으로 등에 철썩 달라붙는다. 이러고서 곧장 학과가 시작이 되니 어느 장사인들 잠에 취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래서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고안해 낸 것이 비가인 것이다.

순호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잽싸게 PX로 뛰어가 사넣은 비가를 호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잠을 깨우는 데에는 충분했다.

그것은 교관에게 들키면 개망신은 고사하고 순호로서는 제일 싫어하는 구보라는 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바싹 긴장이 되어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비가의 포장지는 유난히도 소리가 잘 났다. 아마 사탕이 녹아도 붙지 말라고 일부러 종이에다 기름을 먹인 탓에 더욱 요란했을 것이다. 손가락 끝으로 3, 4분 정도가 걸려서야 겨우 소리없이 종이를 벗겼다.

이제 남은 일은 교관과 옆자리의 장교후보생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고 입에다 넣는, 그야말로 어려운 것이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입 속에다 던져 넣어야만 하는 것이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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