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한국교회 목사 열전 (2) 평양교회 개척자 한석진 목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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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성경 말씀 상고,  많은 사람들을 전도해

열렬한 웅변 전도설교… 첫 공식 예배 드려

1892년 3월 평양에 온 한석진은 전도했다. 6월에 서울에서 신학반에 입학했다. 이때 한석진은 성경공부가 재미있고 구구절절이 신기하고 오묘해 꿀같이 달았다. 성경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사람을 붙들고 전도했고, 숙소에서도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했다. 9월 평양에 돌아와 전도를 계속했다. 전도하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낮에는 어디서나 전도하고 밤에는 배운 성경 말씀을 다시 상고하고 혹은 마펫과 게일 그리고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받은 한문 전도서로 기독교에 관한 서적들을 탐독했다. 

한석진은 마펫 목사와 함께 평양, 의주를 오가며 선교지를 개척했다. 마펫 목사에게 조사의 직분을 받아 평안남도 지방을 순회하며 전도사 직무를 감당했다. 한석진은 많은 사람을 전도했다. 

마펫 목사와 평양에서 최치량 집에 숙소를 정하고 한편으로 마펫 목사와 같이 평양 사정을 살폈다. 그들이 유한 여관 바람벽 벽지가 한문 성경인 것을 발견한 한석진 조사는 깜짝 놀라서 그 연유를 물어보니 그 집 전주인 박영식은 영문(營門) 주사(主事)였는데 그때부터 27년 전에 대동강 연안 만경대에서 토마스 목사가 주는 성경책을 받았고 돌아와서 얼마 동안 감추어 두었던 것을 벽지 대신 발랐다는 것이었다. 대동강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토마스 목사의 순교한 피 위에 한국교회를 설립하게 된 기이한 인연에 한없이 기뻐하고 감사했다.

한석진은 더욱 열심히 전도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집을 다니면서 손을 붙잡고 예수 믿으라고 권하고 자기 숙소로 찾아오는 사람에게도 “우리 살길은 예수 믿고 하나님 섬기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집회 시간에는 열렬한 웅변으로 전도설교를 계속한 결과 몇 달 후인 1893년 10월 마펫 목사와 한석진, 최치량 등 4-5명이 집 근처에 있는 새로 얻은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해 교회가 설립됐다. 그러므로 평양에서 최초로 예배드린 곳은 1892년 4번째로 평양에 왔을 때 최치량의 집에서 교회를 설립할 때 홍종대의 집을 사고 그곳에서 4-5명이 예배드린 것이 공식예배로는 처음이었다. 평안남도와 평양의 최초 교회이며 첫 교인은 최치량이고 선교사는 마펫 목사, 조사는 한석진이었다. 

여기서 널다리에 마련한 예배당 중심으로 마펫 목사의 놀라운 설교와 한석진 조사의 밤낮 전도로 교회는 곧 20여 명이 되어 이듬해 정월 7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맨 처음 세례받은 최치량은 나중에 장로가 됐으며, 그 교회의 초대교인 중 장차 한국 기독교를 짊어질 역군인 길선주, 양전백, 송인서, 이기풍이 마펫 목사와 한석진 조사의 전도로 처음 예수를 믿은 신자로 목사가 됐다. 한석진 조사는 새로 믿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성경과 교회 규례를 가르쳐서 다시 그들이 전도인이 됐다. 

한석진 조사는 널다리 교회 신축을 계획했다. 그러나 외국인의 이름으로는 땅을 살 수 없어서 의주에 있는 가족들을 평양으로 이사오게 해 한국인 이름으로 땅과 집을 사서 예배당을 건축했다. 마펫 목사는 한석진 조사에게 월급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한 조사는 “내가 우리 일을 하면서 외국 사람에게 봉급을 받으면 말이 안 되는 일이요”라고 단연 거절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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