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톡] 나는 불행하지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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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감정은 상실감, 슬픔, 혐오 등의 감정이 희망과 기쁨, 연민 등의 감정과 함께 섞여 있는 상태라고 한다. 그러므로 불행과 행복을 동시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도 양가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젊은 시절의 일상을 고난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의 상황이지만 젊은 시절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어 하나님의 불완전성의 표상이라고 생각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묻고 물었지만 하늘에서는 단 한 번도 속 시원한 답변을 주시지 않았다. 고난에 대한 하늘의 답변은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 나 자신이 찾아야 했다. 

고난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내게 큰 기쁨이었고 매우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 후 고난이 은혜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1994년 어느 날부터 나는 눈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후 지금까지 시력을 잃고 고통 중에 살고 있다. 우리 집의 작은 아들은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30대 중반의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살아간다. 내가 하는 사역은 나그네를 섬기는 사역이며 일반적인 교회의 사역과는 비교할 수 없이 힘들어 모두가 멀리하는 사역이다.

나그네를 돌보는 일과 몽골학교를 운영하는 일, 역파송 선교사를 보내 그들을 후원하는 일, 나섬교회를 목회하면서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겸임교수의 역할 등 나의 목회영역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눈이 안보이지만 나는 열정적으로 일하고 살아간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가 물으면 그것이 내 운명이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것은 내 스스로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된 이후의 모습이며 고난의 의미를 알기 전에는 무기력하고 부정적인 삶을 살았다. 모든 것에 회의적이었으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에 급급했고 불안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그 순간 나는 고난이 은총이고 축복의 통로임을 알았다. 일반적인 잣대로 보면 나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고 이 불행은 죽는 날까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나는 이미 시력을 잃었고 내 아들도 장애아로 살아가니 우리는 그렇게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변했다. 내가 변하니 세상이 변했고 내 영혼과 마음은 한없이 행복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이미 나는 충분히 은혜 가운데 있다. 내가 눈 뜬 것이 기적이 아니라 이것이 기적이다. 그렇다! 나는 불행하지만 또한 행복한 사람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이미 나는 은혜로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것이 은총이다. 은총은 치유가 아니라 회복이다. 회복은 이전처럼 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삶이다. 나는 그것이 완전한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복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것이다. 불행은 세상이 보는 눈이며 행복은 내가 고백하는 은총의 삶이다.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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