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톡]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도마가 한반도에 온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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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전설이다. 전설이라고 하지만 매우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나는 이 전설에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이 전설의 한복판에는 우리 교회 김 장로님의 고향이 있어 장로님의 관심사항이기도 하다. 

오래전 어느 날 나는 책 한 권을 읽었다. 교회사에 관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의 내용 중 경상북도 안동과 영주 사이 어느 지역에 ‘도마상’이라 이름이 붙여진 석가의 석상이 있다는 것이다. 왕유리라는 곳에 있는 이 석상에 관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도마의 것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서는 자신들의 미륵불이라고 한단다.

나는 곧바로 김 장로님에게 전화를 해서 그 이야기를 했다. 얼마 후 나도 그곳을 찾아 갔다. 그곳 석상은 한적한 시골 길 옆 언덕 위에 있었고 결코 작지 않은 크기였다. 그 석상은 목 윗부분부터 머리 부분은 사라졌으나 목 아래 부분은 잘 보존되어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석상 아래에 ‘지전행(地全行)’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마치 성서의 ‘땅 끝까지 찾아가 증인이 되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연상하게 한다.

왜 그 석상이 도마의 석상이라고 했는지는 더 연구해 보아야 하지만 내게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도마가 인도에 온 것은 예수 부활 후 인도의 남부 첸나이라는 곳이었다. 그곳에 가면 지금도 도마의 선교 흔적이 남아 있다. 전설에 의하면 도마는 인도 선교 중 약 3년여 동안 역사 속에서 사라졌는데 그때에 한반도에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는 것이다. 그 때 도마의 중매로 인도 아요타국의 공주였던 허황후가 김수로왕에게 결혼을 하기 위하여 한반도에 왔을 것이다.

내가 영주시의 왕유리 도마 석상을 찾아갔을 때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불교로부터도 기독교로부터도 마치 길가의 버려진 돌 하나쯤으로 취급되는 것 같았다. 도마의 흔적이 한반도에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은 전설 따라 삼천리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모르고 살았던 역사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바울을 통한 서구 기독교의 역사에서 배운 것들이다. 예수 부활 후 도마의 선교는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것이 전설이고 잊혀진 것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는 그보다 훨씬 다양하며 그 깊이는 보이지 않는 우물같이 깊다. 기독교는 우리가 상상하기 이전부터 유라시아 초원을 비롯한 몽골초원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으며 삼국시대에도 우리 한반도까지 흘러 들어왔음이 분명하다. 몽골의 칭기즈칸의 며느리 즉 원나라 태조 쿠빌라이의 어머니도 네스토리안 기독교인이었으며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호름에는 십자사라는 교회 터가 있었다는 학계의 연구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보다 더 앞서 한반도에 이미 기독교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상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도마의 석상을 주목한다.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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