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자랑스런 두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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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라 부르면서 줄줄이 가족을 기리는 날들로 가득 차 있다. 나에게는 두 아들과 이제는 하늘나라에 계시는 부모님 그리고 지금도 함께 살면서 생애 끝까지 함께 할 마눌이 있다. 나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는데 첫째이면서 내가 25살 그리고 마눌이 23살에 낳았기에 이젠 53살인 영빈이가 있는데, 그는 나의 친구들이 결혼은 커녕 아직 연애도 못해본 사람이 많았던 시절에 태어났기에 주변 이쁨을 듬뿍 받았다. 더욱이 돌이 막 지난 때에 그를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기에 많은 사람들이 ‘얼라들이 얼라를 낳았다’고 신기하게 대해주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는 이민 초기의 척박한 환경에서도 순탄하게 성장하였다. 정신없이 바쁜 생활에서도 올곧게 성장하면서 공부를 비롯해 자신에게 필요한 요소를 스스로 해결하는 신통함을 보여주었다. 고등학교까지는 집 근처에 있는 학교를 다녔는데, 대학은 스스로 찾아서 Irvine에 있는 UCI에 입학해서 공부했다. 졸업식에 가보니 그는 졸업생들이 입장할 때에 교기를 들고 맨 앞에 서서 입장했기에 흐뭇했는데, 후에 우등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그 후에 그는 직장생활을 충실하게 해나가는 모범적인 생활을 하다가, 지금의 부인과 만나 새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평소에 나와는 달리 과묵한 그는 번잡한 사회생활과는 거리를 둔 조용한 생활을 하는 편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아서 슬하에 자녀가 없는데 다행히 두 마리의 애견을 키우면서 부부간에는 금실이 좋아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이 보기에 좋다. 어려서부터 나와는 극히 의례적인 대화만을 나누는 관계였기에 이제 한미간으로 떨어져 살기에 자주 만나거나 대화할 기회가 점점 적어지지만 Facebook을 통해 엄마와는 수시로 소식을 전하고, 때로는 선물도 잊지 않는 기특함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아들인 둘째는 1974년생으로 48살인데 아직도 총각이다. 형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답습해서 UCBerkeley에 입학해 순조롭게 졸업했다. 그 전에 중학교 졸업식 때에는 식전에 찾았으나 보이지 않다가, 졸업식장에서 단위 교장 선생님 옆에 앉은 그를 발견했는데, 졸업식에서 학생 대표로 답사를 하는 모습에 주위에서 칭찬하는 소리를 듣고 으쓱했다. 학창시절에 학교 앞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결코 주눅들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는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장난이 심하기로 소문이 났는데, 놀이터에서 놀다가 떨어져 팔이나 다리를 부러뜨리는 일이 많아 항상 붕대를 감고 다니기 일쑤였다. 그러나 마음은 선량해서 남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는 선한 개구쟁이였다. 대신에 사교적이어서 친구들이 너무나 많았는데, 결혼에 이르는 친구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면서 청춘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때 느낀 소감이 ‘결혼했던 친구들이 너무 쉽게 이혼도 한다는 사실’이어서 그는 일찍이 ‘비혼’을 선언하고 이를 지금까지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지금은 혼자 사는 일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지만,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손주가 없기에 ‘나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저씨’라고 애써 항변하는 씁쓸함을 되뇌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살고 아들들은 미국에서 살기에 평소 자주 만날 수는 없는 형편이다. 그러기에 매 주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인들과 교제하는 것도 즐겁지만 비록 나의 인척은 아니어도 장래 교회를 이끌어갈 어린 새싹들을 바라보고 그들에게서 따뜻함을 얻는 기쁨이 크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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