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금반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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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졌다니! 도대체 이럴 수가! 그게 어떤 돈인데!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돈 돈 내 돈이.” 지숙은 움켜 쥔 속옷을 놓치 못하고 어린애처럼 동동거렸다. “여봐요! 가만히 있어 창피하게끔….” 동호는 주위를 둘러보며 얕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돈을 다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지 않았나 하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따지고 보면 돼지 값은 동호로서는 손톱만치도 보탠 것이 없는 순전한 지숙의 것이어서 말머리를 슬쩍 돌리고 말았다.

“아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건데 뭘 그러나 몸만 다치지 않은게 다행이지. 이 사람아!” “뭐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는 거에요!” 소매치기는 자기가 당했으면서 분풀이는 동호에게 해댔다. “글쎄 그러니 어떡하나 이 사람아.” 

다른 때 같았으면 이게 무슨 꼴이냐고 틀림없이 소리를 질렀을 터이지만 그랬다간 마음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는 아내가 기라도 넘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말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봄, 여름, 가을 교장부인이라는 체면도 저버리고 동네방네 다니면서 뜨물을 여나르던 지숙이의 마음이야 오죽이나 아프겠는가 하는 연민의 정이 싸하게 가슴 속에 훑어내렸기 때문이었다. “경찰에다 연락을 하면 안될까요?” “글쎄 마음을 든든히 가지라니까!” “그게 어떻게 해서 모은 돈인데….”

지숙이의 두 눈에서 그제서야 눈물이 넘쳐흘렀다. 동호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여보! 난들 왜 속이 상하지 않겠소. 하지만 이럴수록 침착해야 하는거야. 물론 돈이 중요하지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건 우리 자신이 아닌가. 이제 일단 기차가 출발했으니 논산까지는 갈 것이고 가면 애를 만나야 할게 아니냐구. 먹을 것도 해 왔겠다 얼마나 좋소. 그리고 돈은 애도 말하지 않습디까. 훈련소 안에서는 필요없다고 말이요.”

역시 직업이 선생님이라 조리 있게 설득을 하는 데에는 무어라고 더할 말이 없었다. 동호는 분을 이기지 못해 떨고 있는 지숙이의 손에서 금반지를 보았다. “여보게 당신 금반지가 있지 않나. 오는 여비와 숙박비는 그 값이면 충분하겠네 그려.” “금반지요?” 

지숙은 손가락에 끼여 있는 큼직한 금반지를 내려다 보았다. 그제서야 안도의 빛이 얼굴에 번져나갔다. “되겠네요. 이 금반지를 팔면.” “되고 말고!” 지숙은 동호를 마주 보았다. “미안해요. 당신한테 짜증을 부려서.” “왜 짜증이 안나겠나. 그 돈이 어떻게 번 돈인데.”

동호는 지숙이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겼다. 지숙은 머리를 숙였다. 40여 년을 함께 살아오면서도 교육에 관한 일 아니고는 참견이나 손 하나 까딱하지 않던 동호가 한마디 나무라는 말없이 너그럽게 감싸주는 것이 너무나도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고마워요 당신!” “별소릴 다 하네 여봐! 내가 그 금반지보다 더 값비싸다는 사파리반지 사 줄게.” “사파리라니요?” “왜 있지 않나 큰며느리에게 해 주었던거 말이야.” “그건 사파이어지요.” 동호는 웃었다.

“사파리나 사파이어나 그게 그거지 뭘 따지긴 따지나 이 판국에.” 지숙이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역시 역사선생님으로 평생을 지내온 샌님이라 사파이어를 알 수가 없는게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야! 내 언제 실없는 말 합디까? 꼭 사준다니까 사파리 아니 사파이어반지 말이야.”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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