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교회를 위한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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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국에서의 교회와 신학의 관계는 비판의 대상과 비판의 주체의 관계였다. 즉 신학은 비판하므로 존재하였고, 그 비판의 대상은 교회였다. 이러한 비판자로서의 신학의 기능은 본래 교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잘못을 바로 잡아 유익을 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하였으나, 점점 본연의 자리를 이탈하여 오히려 교회의 상처받은 자리에 더 큰 상처를 주어 불구로 만들기까지 하였고, 유익을 주기보다는 사랑 없는 채찍으로 교회를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다. 

최근 교회 교인 수의 감소에 대하여 교회를 질타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자기 말대로 하지 않아서 교인 수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목청을 돋운다. 그렇다면 이들이 한국교회가 성장하던 시대에는 교회를 칭찬하고 교인 수의 증가에 대하여 박수를 보낸 사람들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교인 수가 감소한다고 비판하는 이 사람들은 교인 수가 증가할 때는 부흥에 대하여 비판을 일삼던 자들이다. 즉 교회가 숫자 불리기를 한다고 비판하고, 수만 많으면 무엇 하느냐 라고 비판하고, 한국교회의 부흥은 문제가 많은 병적 부흥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한편 이들은 자신들이 개설한 블로그나 SNS에 ‘팔로우가 몇만 명’이라고 과시하면서 자신들의 숫자 놀음에 대하여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교인 수가 많아져도 비판이요, 감소해도 비판을 일삼는 이런 자들은 교회를 우군으로 생각지 않고 원수처럼 공격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는 자들이요, 교회에 대하여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들이다. 교회는 그 어려운 목회를 통하여 얻어진 재정으로 신학교를 지원하고 있으며, 그 인력으로 신학교를 채워주고 있는 고마운 어머니이다. 교회와 신학은 혈연관계요 상부상조의 관계에 있다. 교회가 무너질 때 신학은 설 자리가 없으며, 따라서 교회 없는 신학은 공허한 철학에 불과하다. 

오늘날 신학이 무엇을 열심히 하는데도 교회가 점점 더 병들어 간다면 그것은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의 문제이다. 교회를 위한 신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즉 지금까지의 한국교회를 향한 신학적 과제였던 “한국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교회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을 전환하여 이제는 교회의 관점에서 신학 스스로를 바라보며 “한국 신학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 신학 이래도 되나?”를 질문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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