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모윤숙이 ‘사릉’에 춘원을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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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이제는 제발 바른 말 좀 해 줘요. 진정 당신이 나의 시몬이 맞지요? 긴세월 동안 견디며 참아왔던, 깊은 숲속 ‘렌’의 피울음소리를 지금까지도 듣고 있나요?”

모윤숙은 눈빛으로 그 말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앞으로 건강 조심하세요. 어디 가서도 이젠 글만 쓰세요. 제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마세요. 편안하시고.”

모윤숙도 춘원과 이승에서의 이 마지막 만남을 의식한 듯, 이날 작별인사는 너무나 슬퍼보였다. 사리문 밖으로 돌아서는 모윤숙도 몇 번씩 춘원을 뒤돌아보며, 그녀도 더 이상 참지 못하는 듯 마침내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새 색시처럼 찍어내고 있었다. “안녕! 안녕! 숙아! 잘가!” 춘원은 꾸부정한 자세를 겨우 견지하며 언제까지나 시야에서 완전 사라질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세기의 ‘시몬’과 ‘렌’의 영원한 작별은 이날 이런 모습으로 조용히 이승에서 막을 내리고 있었다.

큰 별(星)이 지다… 춘원의 마지막 길에서 벽초 홍명희와 재회

때는 1950년 6.25전쟁, 북한의 남침으로 서울이 사흘 만에 점령됐다. 하루아침에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공산주의 세상으로 바뀌었다. 서울이 수복되기까지 90일 동안 우리 국민은 말로만 듣던 생지옥을 경험했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뀐 서울! 적의 탱크가 길거리에 즐비했고 팔뚝에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동네를 누볐다.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인민군을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해 ‘동무’니 ‘반동’이니 하는 용어를 써가며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우익 인사들은 재산 몰수와 함께 인민재판에 넘겨졌고 인민재판은 인간 사냥터가 됐다. 군중속에서 ‘죽어라’ 한마디만 나오면 곧바로 처형에 들어갔다. ‘파리목숨’이 현실이 된 것이다.

적 치하 90일은 그야말로 집단학살, 처형, 납치가 일상인,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 서울은 수중에서 아수라장이 되어 몹시 신음하고 있었다.

오늘도 종로경찰서에 주둔하는 북한 인민군의 정치군관 안무혁 대좌가 총 든 인민군 병사 몇 사람을 앞세워 효자동 춘원 이광수 자택을 방문하였다. 춘원 이광수와 아내 허영숙과 두 딸 정화, 정란이 한 가족을 한 방에 앉혀놓고 지금 춘원을 몹시 닦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보시라요. 춘원 선생! 우리 공화국을 위해 써 달란 말이오! 계속 오늘도 거부하면 강제로 끌구 오라는 사려온 동무 명령이야요. 날래 쓰시라요.”

군관 안무혁은 글 잘 쓰기로 소문 난 춘원보고 ‘인민군 서울 입성 환영사’를 써 달라고 어제부터 와서 달달 볶으며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줄곧 묵묵부답으로 거부하던 춘원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레 엔간하믄, 써 주갔지만, 지병이 도져 중환자라 지금은 손이 떨려 도저히 쓸 수 없어요.” “무슨 병이요?” 군관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폐병 말기요. 밤마다 각혈하고 있소. 좀 떨어져 앉아 있는게 좋을께요. 전염된다니까.”

춘원은 손으로 저리 가라는 몸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군관은 얼굴을 찡그리며 빠른 동작으로 코를 막고 한자 물러 나 앉는다. 그러면서 군관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갑자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보던 서류를 한 장 넘기면서 군관은 눈을 부릅뜨고 큰 소리로 물었다.

“이 집 아들, 이영근이는 왜 안보이나?” 순간 허영숙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즉흥적으로 바로 연극에 들어갔다. 목청을 세워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그 애 얘기는 꺼내지도 말아요.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행불된지 벌써 여러 날 되었소.”

허영숙의 연기는 정말 실감났다. 그녀는 정말 감정이 북받쳤는지 진짜 울고 있었다. 군대 갈 나이가 다 된 아들 영근이가 잡혀서 인민군에 끌려갈까봐 엄마 허영숙은 노심초사 그것이 요즘 제일 큰 걱정인 것이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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