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발언대] 곽안련 선교사의 헌신•복음의 열정으로 세워진 광릉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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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섬기고 있는 광릉내교회의 시작은 1906년 장마당에서 복음을 전하던 곽안련 선교사를 마을로 초대한 최억준 청년의 호기심에서 시작이 된다. 두 사람의 만남은 선교사가 전한 말씀을 통해 예수를 영접했고, 자신이 사는 집에서 예배하다가 열심 전도하여 수십 명의 성도로 증가했고, 예배당을 건축했다고 최초의 역사책인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에(1928년 10월 출간) 기록되어 있다. 이후에 1907년 퇴계원교회, 지사리교회, 풍양교회, 양지교회, 광릉천교회를 한 구역으로 순회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곽안련 선교사가 관리하던 중 조사 정윤수, 차상보, 정인호, 안극선 등이 시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곽안련 선교사는(Charles Allen Clark, 1878. 5.14-1961. 5.26) 미네소타 대학과 매걸레스터 대학을 거쳐 매코믹 신학교를 졸업, 북장로교회의 선교사로 지원해 1902년 9월 22일에 내한했다. 1904년 승동교회 부목사로, 2년 뒤에는 담임목사가 되어 1922년까지 사역했다. 그는 서울지역뿐 아니라 서울 동북지역 순회 전도를 수없이 다녔으며, 그는 1902년부터 40년 동안 150여 개의 교회와 6천여 명의 성도를 목양했다. 선교사님은 평양신학교 전임교수로 1908년부터 1941년까지 실천신학 교수로 많은 목회자 양성에 영향을 미쳤다. 곽안련 선교사는 51권에 이르는 책을 저술했다. 그중 시카고대학 철학박사 학위 논문은 한국교회와 네비우스 정책을 정리하는 등 문서선교의 큰 발자취를 남겼다. 

많은 선교사 중 한국교회 부흥에 가장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되며 교회는 곽안련 선교사의 열정과 헌신으로 세워진 교회로서의 자부심으로 2021년에 선교사님의 소명을 따라 미래의 한국교회와 통일 한국의 비전을 위해 ‘곽안련 센터’를 세웠다. 미국 미네소타주의 한 청년이 서울의 동북쪽 아주 작은 시골까지 찾아온 복음의 열정과 꿈이 이제 새로운 땅끝을 향하여 출발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117년의 긴 역사는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일제의 탄압과 육이오의 시련, 배고픈 6-70년대를 감당해오며 농촌교회로서 아픔과 근심한 시련을 겪으며 성장해 왔다. 이곳을 거친 수많은 성도는 도시교회의 많은 일꾼을 공급하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감당해 왔다. 

이제 교회는 곽안련 선교사의 꿈과 주님의 뜻을 따라 다음세대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곽안련 선교센터’는 그꿈의 상징이며 자부심이고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의 비전이 될 것이다. 교회는 역사관을 계획하고 있으며, 곽안련 선교사의 열정과 복음 사역의 소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다음세대와 또 다른 땅끝을 향하는 주님의 큰 뜻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윤보근 장로

<서울동북장로회장·광릉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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