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혼혈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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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호의 희망은 단순했다.

힘세고 일 잘하는 황소와 젖이 풍부한 홀스타인 사이에서 태어나는 암놈이라면 그야말로 일 잘하고 젖도 많아 꿩먹고 알먹는 일거양득의 기가 막힌 것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인 것이다. 처음에는 서둘러 강제로 합방을 시키는 바람에 실패했었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서로가 낯을 익힌 탓인지 간절히 원하던 암놈을 덜렁 낳아준 것이다.

이름은 한우의 ‘한’자와 홀스타인의 ‘홀’자를 따서 한홀이라고 지었다.

순호는 매일같이 눈만 뜨면 옥이야 금이야 하며 짚을 갈아주고 온도를 재면서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봄 가을이 몇 번인가 지나갔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갈수록 어찌된 게 모든 증세가 좋은 쪽보다는 좋지 않은 쪽으로 기울어져 가기만 했다.

어느 날 교회 전도사가 찾아와 용기를 내라는 뜻으로 한다는 말이 “냉이 같은 것을 누가 심고 물주고 가꾸어 주나요? 그렇지만 얼마나 잘 자랍니까? 그러니 우리들 구미에 맞도록 개량 육성한 배추나 무는 싹이 돋을 때부터 벌레들이 덤벼들어 먹어치우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선생님네 혼혈젖소도 바라시는 대로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우수종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고 봅니다”라고 했다. 그 말 자체로서는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자연환경을 견디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열등종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인 것이었다.

어쨌든 겉으로 보아서야 알 수가 없는 것이니까 밭으로 끌어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켜보고 젖도 짜보아야 할 게 아니겠느냐고 결론을 내렸다.

마을사람들이 밭으로 몰려 들었다.

순호는 자신이 만만했다. 듬뿍 정을 담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이랴!” 어찌된 게 한홀이는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랴!” 순호는 혹시 못 들었나싶어 큰소리로 질러댔다. 그래도 한홀은 큰 눈만 껌벅일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왈칵 둑이 터진 물소리처럼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니까 공부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씀드려서 우리들의 보는 눈이나 생각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마 선생님은 저를 나이도 어린게 뭘 안다고 시건방지게 떠들어대느냐고 하시겠지만 저는 단지 사실을 보고 느낀 대로 말씀을 드린 것뿐입니다.”

순호는 움칫했다. 마치 마음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이 꼬집어내는 전도사가 어쩐지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관을 나서면서 하던 말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지지를 않았다.

“제가 전도사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사실은 세상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련해 주신 것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어서 우리들의 구미에 맞도록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바꾸어 가다 보니까 이제는 처음 것보다도 훨씬 나약한 말하자면 병신으로 만들어놓고 만 것입니다. 요즘 말로는 이러한 것을 공해라고 하지요.”

‘그렇지! 한홀에게 잘못은 없지.’ 원망스럽고 밉기만 하던 한홀이가 갑자기 불쌍해졌다. 홧김에 제대로 배합사료도 섞어주지 않았고 게다가 나도 모르겠다는 심사에서 잘 챙기지도 못했던 것이다.

순호는 급히 외양간으로 달려갔다. 눈이 크고 얼룩진 한홀이 눈웃음을 치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는 격에 어울리지 않는 굵은 목소리로 ‘음매~’하고 소리를 지를 것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외양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았다. 그저 텅 비어 있을 뿐이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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