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의 생활신앙] 꿈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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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속담에 “近者說, 遠者來”란 말이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기뻐해야 먼 데 있는 사람들도 온다는 말이다. 강의를 하는 교수(학자)나 설교(강론, 법문)를 하는 성직자(목회자)는 청중(시청자, 수강생, 교인들)에게 엄중한 책임과 예의를 지켜야 한다. 우리는 강의 전에 스스로 다짐을 한다. 듣는 이(보는 이)의 귀중한 시간을 내가 쓰기 때문에 최소한 그 시간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① 가능한 한 유익한 강의를 하자. ② 그것이 안되면 가능한 재미있게라도 하자. ③ 유익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면 짧게라도 하자고 다짐한다. 그래서 강사나 설교자가 자기 강의나 설교에 대해 본인 자신이 감탄하고 기쁘고 유익함을 느껴야 되는 것이다. 자기도 이해가 안되는 말, 자기도 지루한 말을 던지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다. 듣는 이에게 해악을 끼치는 일이요, 귀중한 시간을 뺏는 도둑이나 다름없다. 중국 <史記>에는 “桃李不言 下自成蹊”(도리불언 하자성혜)란 말이 나온다.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아무 말 없어도, 그 나무 밑에는 오솔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잔뜩 맺고 서 있는 나무 밑에는 초청하지 않아도 그 열매를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게 돼있다. 꽃은 자기를 찾아오는 벌이나 나비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다. 반드시 꿀을 주어 보낸다. 그러니까 열심히 기쁜 마음으로 꽃을 찾아오는 것이다. 찾아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찾아오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도록 꿀을 준비해두는 것이 목회요, 강의(대학)이다. 주고 베풀 것(매력/유익/보람)을 준비해라. 예배에 꼭 나오라고, 빠지지 말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하지 말라. 그 대신 안 온 사람이 후회할 수 있도록 유익하고, 재미있는 것을 준비하라. 또 다른 고전에 “冬日之陽 夏日之陰 不召而民自來”겨울철의 양지와 여름철의 그늘에는 불러내지 않아도 백성들이 스스로 찾아온다라는 말이 있다. 겨울철에는 난방(따뜻한 것)을 준비하고 여름철에는 냉방(시원한 것)을 준비해라. 그러면 초청 광고나 강요를 하지 않아도 자기 발로 찾아올 것이다. 차린 것도 없이 사람을 불러모으면 안된다. 찾아온 손님(교인)들을 배고프게 해서 보내지 말라. 그러면 다시는 오지 않든지, 다른 곳(교회)으로 가게 돼있다. 더 재미있고, 더 감동적인 곳으로 가게 돼있다. 자기 발로 오고 가는데 무슨 재주로 막을 것인가? 특히 요즘처럼 기독교 계통의 TV채널(CBS/CTS/C채널)이 24시간 방영되고, 각종 교계신문들이 발간되며 평신도도 목회자 이상 좋은 도서와 설교집들을 읽고 있는데 너무 안일한 목회를 해서는 안 될 것같다. 주일 예배 후 교인들의 표정과 몸짓을 보라. 포만감에 만족한 얼굴로 화색이 돌고 있는지?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 만족하고 얻을 것이 있으면 제발 나오지 말래도 나올 것이고, 맹물만 주면서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종례시간에 훈계하듯이 시시콜콜한 생활지도(주의사항)만 계속하면 교회 출석의 열기는 얼마 못 가 식을 것이고 예배 참석이 의무사항이 되어 표정이 굳어질 것이다. 교회 현관에서 안내를 맡아보면 안다. 지금 예배가 시작된 시간인데도 교인들이 천천히 걸어서 오면 그 교회는 매력(흡입력/지도력)을 잃은 교회다. 땀 흘리며 뛰어와야 제대로 된 교회다. 예배나 설교가 아까워야 뛰어오는 것이다. 설교 한 편을 듣는 동안 암기하고 싶은 구절이 한두 구절은 있어야 한다. 설교 듣다가 호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적어갈 만한 내용이 한두 개는 있어야 한다. 들으나 마나 한 소리는 복음(福音)이 아니라 소음(騷音)이다. 듣는 이의 값진 시간을 뺏고 도둑질하는 짓이다. 강의하는 이와 설교하는 이들은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되는 게 아니다. 듣는 이들의 귀가 여간 높아진 게 아니다. 몰랐던 지식을 주든지,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재미있게라도 하든지, 그 모든 것이 아니면 짧게라도 하기 바란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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