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 보아스] 조율 통한 하나 됨의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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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가정에서 피아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지만, 필자가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에는 피아노가 없는 가정이 드물 정도로 많은 가정이 피아노를 가졌고, 이 가정 저 가정에서 울려오는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시절 피아노를 조율하기 위해 찾아온 조율사는 피아노를 열어 먼저 한 음의 소리를 들은 후 그 소리에 맞춰 다른 건반들을 치며 조율을 이어갔다. 나중에 그 음이 어떤 음이었는지를 물으니 ‘라’(A) 음이라고 하며, 이 ‘라’ 음을 기준으로 다른 건반을 조율해 간다고 설명해주었다. 조율사가 조율하기 전에는 각 건반에서 음이 맞지 않는 소리를 내고 있었기에 악보에 따라 건반을 누를 때 왠지 부자연스러운 소리를 냈지만, 조율을 마친 뒤에는 하모니를 이루며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하모니를 이루게 하려고 조율사는 기준보다 높게 잡힌 건반의 소리를 낮추고, 기준보다 낮게 잡힌 소리를 높이며 기준에 맞게 조율한다. 이런 과정이 있기에 많은 건반이 조화를 이루며 듣는 이들을 즐겁게 한 것이다.

이런 조율의 과정은 오케스트라의 조율(tuning)과정이나 매주 올려드리는 찬양대의 찬양 준비과정에서도 볼 수 있다. 오케스트라 역시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기본음을 울리는 오보에의 소리에 맞춰 크고 작은 악기들이 음을 바로 잡고, 찬양대도 조화로운 소리를 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서 내 소리를 조절해 간다.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하여 하모니를 이뤄야 하기에 높거나 낮은 자기의 소리를 조절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이치를 우리가 사는 공동체에도 적용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 의견이 반드시 옳다는 사고를 버리고 내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인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토론도 가능하고 조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나침반을 보기도 했고, 나침반이 움직이는 것도 확인한 적이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모든 나침반은 한 방향을 향해 쉼 없이 움직인다. 북극성을 향하기 위한 것이다. 개인의 좌표와 북극성을 향한 방위는 바뀔 수 있지만, 북극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다른 별들과는 달리 하늘에 고정되어 있기에 북극성은 항해자들에게 방향 감각을 주며 확실한 안내자가 된다(AQUA CHURCH 참조).

믿음의 길에 기초와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믿음의 창시자이시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분명히 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절). 여기 ‘주’는 인도자 혹은 창시자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길을 앞서 걸어가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믿음의 창시자일 뿐만 아니라 믿음의 완성자(온전케 하시는 이)이시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마치 사사시대처럼 많은 이들이 저마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여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최근의 상황을 볼 때 이런 현상이 일부 언론이나 각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기독교 신앙과 교단 총회에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그 어떤 것들이 기준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매사에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자기의 생각들을 조율하여 하나 됨의 하모니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홍술 목사

<평화로운교회·총회규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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