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생명의 길을 따라온 걸음 정봉덕 장로 (16)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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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교회, 지역사회 개발 돕는 등 삶의 질 높이는 데 모범

  정봉덕 장로는 1927년 생으로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군대시절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한 뒤 60여 년간 주의 신실한 종으로 한국교회를 위해 애썼다.

  총회전도부 간사를 시작으로 총회 사회부 총무, 공주원로원 원장, 한아봉사회 설립, 생명의 길을 여는 사람들 등을 설립했다. 남은 생애 다가올 통일을 준비하며 북한 정착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하며 기도로 준비하고 있다.- 편집자 주 –

또한 “사회 개발은 정의롭고, 모든 시민과 민중이 함께 참여할 수 있고, 스스로 지속가능한 평등사회로 개발되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므로 사회 개발을 위한 교회 참여의 3대 방향으로 첫째, 빈곤과 불의에 도전하는 투쟁, 둘째, 새 사회 경제 질서 수립에 협력, 셋째, 정의, 자유, 평화 속에 함께 살도록 인간들의 새로운 구조 형성을 제시했다.

이어서 연세대학교 노정현 박사는 ‘사회문제와 사회 참여’에 대한 발제에서, 우리 사회가 과거 권력 지향에서 소유 지향으로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말하며, 급속한 경제 성장이 재산의 편재, 도농 간의 격차, 청소년 범죄 문제 등의 심각한 사회 문제를 가져왔다고 언급했다. 교회도 대도시로 몰리고, 형태 또한 대형화가 되면서 하나님의 선교가 요원해지고 인간 가치의 상실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신인현 목사는 ‘도시교회와 사회개발’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개발이란 인간관계의 개발이 핵심이며, 이를 위해 교회가 신앙 경력에 대한 개발, 재능의 개발, 가정의 개발, 소그룹 개발, 어린이 개발, 귀속 감정 개발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개발의 효력을 위해서 사회 상황 파악, 정보와 지식을 통한 평가와 판단, 계획 수립과 실천 단계 이행 등을 제시했다. 사회개발은 교회가 말한 은혜에 대한 보답이며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에 보답하는 봉사의 구체화라고 결론을 맺었다.

제2차 기독교사회문제협의회에서 확인한 이와 같은 것들을 공유하기 위해 보고서를 작성하여 전국 교회에 보내고, 사회부는 이 모임에서 토의된 정신에 부합하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그 이후 12년간 총회의 승인으로 두 번 더 총무직을 연임하면서 나는 그 정책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다.

내가 취임하는 당시에는 기존 사회부 부서로 구제위원회와 은급위원회를 두고 있었으나, 1980년(총회 65회기, 박치순 총회장)부터는 총회 사회부의 조직을 복지분과, 훈련분과, 교회와 사회분과로 구분하여 사역을 진행했다. 이러한 틀은 분과를 재편하기 전인 총회 83회기(1998년, 유의웅 총회장)까지 유지되었다.

복지분과

1979년 5월 21일 영락교회에서 ‘주민봉사 및 지역사회 개발 사례 발표대회’를 가졌다. 청십자 한국의료협동조합 전무인 채규철의 특강과 ‘교회와 지역사회’라는 제목의 홍성현 목사의 강연 그리고 다양한 사례 발표를 통해 교회가 지역사회 개발을 위해 어떠한 일들을 계획하고 추진해야 할지 함께 논의하게 되었다. 복지분과의 사역들은 이러한 모임들로부터 시작되고 확장되었다.

당시 복지분과에 부과된 사업으로는 수해구호, 구속자와 구속자 가족 돕기, 해직 교수 구호, 자선사업재단 활성화, 인권위원회 철야기도 시 부상자 후원, 교역자 은급제도 활성화 등이 있었다. 금강과 영산강 유역에는 해마다 수해가 발생하여 전국 교회의 헌금으로 구호 활동을 벌였다. 군사정권시대에는 반인권, 반민주에 항거하다가 구속된 많은 분들에게 영치금과 그 가족에게 구호금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소련 아르메니아 공화국, 레바논 등 홍수, 지진 등의 재해를 당한 나라에 구호금과 구호품을 보냈다.

또 하나의 중요 사업은 한국교회 100주년을 맞아 제정된 ‘사회봉사상’이다. 사회봉사상은 교회와 기관,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실천해 온 희생적인 사회봉사 활동에 대해 시상함으로써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들을 본받아 삶의 현장에서 봉사를 생활화하도록 하기 위하여 시작된 것이다. 한국교회 100주년이 되는 해인 1984년 9월 제1회 사회봉사상을 시상하였고, 그 후 매 3년마다 총회 기간에 시상하는 영구적인 제도로 자리잡았다. 사회봉사상 교회 부문 첫 수상 교회는 도림교회(유의용 목사)이다. 도림교회는 이미 1981년에 지역사회개발교육원을 신설하여 지역사회 개발을 돕는 등 지역사회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한국교회의 모범이 되었기 때문이다,

복지분과의 이러한 사역들은 이양덕 목사와 그 후임 윤태영 목사의 헌신으로 다져질 수 있었다.

훈련분과

목회자 사회선교 해외훈련, 교회지도자 훈련(사회개발과 선교권 강화), 여성지도력 개발 등의 훈련을 개발하고 진행했다. 목회자 사회선교 해외훈련 프로그램은 우리의 경험을 나누고 상호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며 참가자들로 하여금 선교의 영역에 대한 인식을 넓히기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이다. 특히 교회지도자를 훈련하기 위해 1979년에 시작된 ‘사회개발과 선교권 강화’는 그동안 자기중심적으로 성장을 꾀한 한국교회가 교회의 선포적, 친교적, 봉사적 기능을 포함한 포괄적 선교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교역자, 평신도, 그리고 관계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지도자를 훈련시켜 지역사회 개발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훈련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도입에는 이삼열, 김용복 박사의 도움이 컸다. 사회선교 훈련을 위한 방법을 고민하며 김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통해 독일 개신교개발원조국(EZE)에 프로젝트를 제출하라고 제안했고, 나는 그의 제안대로 하여 독일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사회개발과 선교권 강화 훈련’이다.

일주일간의 합숙훈련을 통해 친교와 동지의식을 높이며, 선교신학, 한국사회 이해, 한국교회사, 지역사회 복지, 지역사회 조사방법론, 현장탐방 그리고 나머지 피교육자가 시무하는 지역사회 조사 보고와 토론, 프로젝트 작성을 하게 했다. 단순히 이론 수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범사업을 시도하여 훈련생들로 하여금 경험을 쌓도록 하며 총회산하 사회선교기관(지역학교, 탁아소, 도시산업 선교회 등)을 방문하는 기회도 제공하는 등 대사회 봉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높이도록 하였다.

나도 총 다섯 번의 합숙훈련을 받았다. 해직교수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영역에 걸친 다양한 강의는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 주었다. 가장 큰 변화는 신문의 어떤 면을 펼쳐도 그곳에 적힌 이야기들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훈련은 이후 내가 사회를 바라보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이 훈련이 그 역할을 지속적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훈련원을 총회에 소속시킨 것은 일개 부서가 아니라 총회 차원에서 교역자와 평신도를 효율적으로 교육·훈련하라는 취지였는데, 지금 그 의도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훈련분과는 박창빈 목사와 김영락 목사가 중심이 되어 여러 사역들을 이끌었다.

정봉덕 장로

<염천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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