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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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벼락 부자가 생겨나던 20세기 전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계적인 갑부로 록펠러를 꼽는데 주저하는 사람은 없겠다. 미국의 석유왕이라 불리는 존 록펠러(John Rockfeller 1839-1937)는 집안이 가난해  비록 고등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타고난 상업적인 능력으로 인해 일찍이 성공할 자질을 보이다가 때마침 펜실바니아에서 석유광맥이 발견되면서 뛰어난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31살의 젊은 나이에 스탠더드 오일을 창업하고 이를 급진적으로 키워냈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개인적으로는 수전노 같은 생활을 했고, 경쟁이 치열한 석유산업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해서는 안될 비인간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가 어느정도 성공한 후에 자신을 돋보이고자 출석했던 교회에 상당한 금액의 헌금을 한다고 했을 때에도 냉혹한 사람의 헌금은 사양한다고 했던 경험이 있었다. 이렇게 사업적으로는 성공했던 그에게 마치 하늘의 심판이 내리듯 50세가 지나면서 건강에 이상을 느끼다가 55세에는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얼마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진단까지 받았다. 그때 병원에서 병색이 짙은 어린 딸을 데리고 온 어느 부인의 사연을 듣게 되었으니, 병원비를 미리 내야 입원해서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내막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비서를 시켜 그 불쌍한 소녀의 병원비를 지불하고 완치될 때까지 책임지고 뒷바라지를 하게 하였다. 그 후에 소녀는 병이 완치되었으며, 이러는 사이에 불치병이라는 자신의 병도 어느덧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남에게 베푸는 법과 그에 따르는 축복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시카고 대학을 설립해서 후진을 기르는 육영사업을 필두로 록펠러 재단을 설립해서 병원 의학연구소 교회 학교 등의 문화사업 전반에 걸쳐 후원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이로써 냉혹했던 사람에서 최고의 자선가가 되었다.

 얼마 전에 평생 모은 재산 1조 7천억 원을 장학재단에 기부한 관정(冠廷) 이종환 삼영 화학그룹 명예회장이 100세의 나이로 서울대학병원에서 별세했다. 그는 1958년 플라스틱이 신문물로 인기를 끌던 당시, 플라스틱 컵 바가지 등을 만들어 팔면서 큰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198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던 둘째 아들이 난치병으로 꿈을 피우지 못하자, ‘일류 인재 육성’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다. 그는 일찍이 장학재단을 만들어 인재양성에 힘을 쏟아 박사만 750여 명을 키워냈고 일생을 통해 모두 23년간 1만 2천여 명에게 총 2천700억 원의 장학금을 지불하는 등 그의 전 재산을 기부했다. 평소에 점심은 짜장면을 즐겨 먹어 근검절약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그는 평소에도 “돈을 벌 때는 천사처럼 벌 수는 없지만, 쓸 때는 천사처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사망하기 3주 전에도 지방에 있는 공장을 돌아보던 그는 이 세상에서 그의 모든 소임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향했다. 그가 평소에 그렇게 바랐던 ‘노벨상을 받는 기쁨’을 보는 즐거움은 이제는 그가 하늘나라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다만 그 이름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이름인가가 중요하다. 우리는 남에게 좋은 이름을 남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명심해 선행을 은밀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이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는다고 섭섭할 필요가 없으니, 분명하게도 하늘나라에 있는 생명책에는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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