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스포츠맨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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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배드민턴 2관왕 안세영 선수가 단연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단식 결승에서 무릎부상에도 불구하고 2대1의 스코어로 숙적인 중국의 첸위페이를 누르고 금메달을 땄을 때 한국과 세계의 팬들은 그의 엄청난 기량과 투혼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대회를 마치고 돌아와서 안세영은 또 한번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광고 출연을 사양하면서 그는 “운동선수는 연예인이 아니다”고 선언하고 내년에 열리는 파리 올림픽을 대비해 훈련에 매진할 뜻을 밝힌 것이다. 

스포츠는 인간 육체의 기량을 극대화하려는 활동인데 스포츠맨십은 여기에 ‘정정당당’이라는 정신적 요소가 가해지는 것이다. 올림픽 모토는 라틴어로 Citius, Altius, Fortius 즉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였다가 몇 해 전 여기에 Comuniter 즉 ‘다 함께’가 추가되었다. 경쟁은 이기기 위한 것이지만 그 과정이 정정당당하여 모든 참가자들이 공동의 영예를 추구한다는 정신을 올림픽위원회가 새로이 강조한 것이다. 이는 개인간 국가간의 경쟁에서 정신적 측면이 자꾸만 도외시되기 때문이었다. 

항저우대회 롤러스케이트 경주에서 우리 선수가 일등으로 골인하는 순간 타이완 선수가 발끝을 먼저 결승선에 대는 바람에 우승을 놓치는 일이 벌어졌다. 금메달을 목에 건 이 선수는 며칠 후 국내 체전에서 선두로 들어오다가 뒤따르던 선수가 스케이트 끝을 먼저 결승선에 붙여 1위를 빼앗기는 실패를 맛보았다. 

사실 이 ‘수법’은 오래전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김동성 선수가 처음 선보여 스포츠계의 주목을 끌었었다. 하지만 그런 광경을 볼 때마다 이게 과연 ‘정정당당’이라는 스포츠맨십에, 즉 올림픽 모토의 ‘더 빠르게’란 기본에 합당한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스케이트 날 끝보다 몸 전체가 앞서야 더 빠른 게 아니겠는가? 

우리 우상호 선수가 세계대회를 휩쓸고 있는 높이뛰기에도 의아한 대목이 있다. 언제부턴가 선수들이 몸을 뒤집어 등을 아래로, 배를 하늘로 향하고 바를 넘어가는 동작으로 경기를 해오는데 우리 우 선수도 같은 방식으로 높은 기록을 세우고 있다. 실생활에서 이런 식으로 장애물을 넘다가는 땅에 떨어지면서 사람이 다치게 되니 이것이 Altius, 더 높이의 정신에 맞는 것일까? 적어도 고대 헬라 문화에서 이런 방식의 높이뛰기는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스포츠에서의 ‘꼼수’라고 할 행동들을 지적하는 뜻은 오늘날 민주정치 사회에서도 권력을 향한 경주에서 머리 좋은 사람들이 합법의 탈을 교묘히 당겨쓰고서 불의한 짓들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것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법집행자들은 이들을 추적하며 불법을 입증하려고 애를 쓰지만 재판까지 끌고가기 전에 지쳐버리고 그러다가 그들이 권력이라도 잡는 날에는 만사휴의(萬事休矣), 정의는 한없이 미뤄지고 만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경주자의 달리기에 비유하고 있는데 그는 상(賞), 즉 구원을 받기 위한 제1원칙을 법대로 행하고 절제하는데 두고 있다. 세상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우리가 정정당당을 붙잡고 가야함은 당연한데 그에 더하여 주변에서 날로 교묘해지는 간지와 꼼수를 밝혀내고 차단해야 하는 책무까지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모두다 안세영은 될 수 없을지라도 스포츠맨십 비슷한 것을 따라가려 노력해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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