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새로운 비전 세우는 계기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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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에는 어느덧 다사다난했던 계묘년(癸卯年) 한 해가 저문다.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의 현실 앞에 걱정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더욱이 믿음의 권속들에게는 장차 나라의 운명이 불러올 불확실성에 대하여 기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고 회개가 절실한 시기가 왔다 하겠다. 

나라의 등판에 깔린 민족의 운명 같은 기조는 날로 민심을 가르고 하나로 묶기는 커녕 날로 좌우로 비등할 뿐더러 때를 만난 고기떼들처럼 불순세력들은 호재를 만난 듯 편승하여 세상을 더욱 시끄럽게 날뛰고 있으니 정말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국가는 민생을 책임지고 안위를 담보하는 막강한 권력이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나라의 권위에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매체들은 무엇에 병들었는지 날마다 유언비어 혹은 가짜뉴스로 조금도 사리지 않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쏟아내며 혼란케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즈음에 한숨을 쉬며 슬퍼하는 가슴에 위로의 성령이 함께 해 주시길 바란다.

이제는 결산을 할 때가 왔다. 뜻대로 되었든 미흡했든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결산을 할 때가 왔다. 잘된 일은 자찬을 하고 미흡한 것은 새로운 시작에 또다시 주문을 해야 한다. 잘 못한 일은 그냥 방치할 수 없고 미흡했던 일은 새로운 발전을 위해 주저 없이 진일보를 해야 한다. 우리는 결단코 좌절할 수 없다. 인간의 명제는 또다시 출발이라는 주문으로 하나님이 내리신 사명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한국 교회는 여전히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살기가 좋아졌다고 기도를 뒤로 하는 현실적 악풍에 주님은 슬퍼하고 있다. 믿음의 선조들이 지난 날 눈물로 기도했던 믿음의 전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 이 땅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기도를 했다. 그래서 주님을 감동 시켰다. 그렇게 얻어 낸 보화를 지킬 줄 모른다면 우리들은 또다시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이후 이것을 아는 국가와 교회만이 미래가 있고 새로운 비전에 도전할 자격이 있다. 배부른 교회가 되어 굶주리고 허덕이는 자기 양떼는 모른 체하고 무슨 큰일을 하듯 바다 건너에 과세하는 모습을 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 점을 생각해 볼 때다.

내 주위에서 가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자가 없는가를 의무처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있는 것으로 자랑치 말고 돕는 것을 자랑하는 위선을 가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이를 눈여겨 살핀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권속들은 모두 미래의 주인공들이다. 그때 모두가 세상을 잘 그렸다고 칭찬 듣는 은혜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한다. 예수께서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이라 했다. 흔히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들 한다. 성경은 이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라”(딤전 6:7)고 했다. 우리 모두가 말씀들을 깨닫는다면 이를 실천해서 주의 뜻을 온전케 해야 할 것이다. 

새해는 갑진년(甲辰年) 푸른 청룡의 해이다. 분단된 현실과 살얼음판 같은 국제적 정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겠고,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며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이길 바란다. 인간은 세상을 그리는 화가들이다.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그렸느냐가 가치 기준이 되어 미래를 보는 안목으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맞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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