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발언대] 성탄, 아름다운 기억과 아쉬움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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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하면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 손수 만드는 성탄트리를 장식하면 부르던 찬양이 있었고 거리마다 들려오는 성탄의 노래가 아기예수 탄생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 같이하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베일 속에 감추어지듯 성탄의 노래가 사라져 아쉽다. 이는 저작권으로 인한 캐럴송이 거리 곳곳에서 거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캐럴송을 듣는 또 다른 스마트폰의 문화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거리 곳곳 건물마다 성탄트리가 없어 썰렁한 이유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아닐 것이다. 또한 교회도 예전 같지 않게 간단히 성탄 장식하는 경우도 있어 보인다.

성탄축하 전야로 어린아이부터 청년, 장년에 이르기까지 축하 발표회를 하고 사랑의 음식을 나누고 선물도 나누는 아름다운 시간이 이어지지만, 새벽송이 사라져 아쉽다. 그 시절 무릎까지 푹푹 빠지며 눈길을 다니던 기쁨의 새벽송 “기쁘다 구주 오셨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부르던 찬양이었고 노랫소리에 단잠 깨고 나와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해 주고 함께 기쁨을 나누었으며, 혹 못 뵈올까 문 앞에 매달아 놓은 사랑의 선물 꾸러미가 맞이한다. 그렇게 멀고 가까운 길을 새벽송으로 기쁨의 소식을 전하고 교회로 돌아와 꽁꽁 얼어버린 발을 한 이불에 같이 묻고 녹이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밤새우다 사르르 잠들었다 부스스한 얼굴을 털고 기쁨의 성탄감사예배를 드리던 아름다운 기억이 사뭇 그리워진다. 

대림절 세 번째를 보내고 네 번째 주일을 맞이하게 된다.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가장 비천한 곳으로 오셨지만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사랑과 평화와 기쁨을 우리에게 주셨고, 평화의 왕으로 오심으로써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시작임을 알 수 있다. 또, 이 땅에 오심은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통해서 현재의 우리의 죄, 장차 다가올 죄까지도 감당하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심이다.

성탄의 기쁨이 무르익는 지금 우리의 시선은 성탄의 노래와 화려하게 빛나는 성탄장식 의미를 알아야 한다. 섬김 받으려 한 것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며 죽기까지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모든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드리며 불평 원망이 아닌 진정한 찬양의 삶으로, 조금 더 낮은 곳, 조금 더 부족하고 연약한 곳을 향하여 복된 찬송이 울릴 수 있도록 기도하는 우리의 하루가 되어야한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성탄 맞이하면서 우리는 정말 예수님의 일하심과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며 소망하고 있을까? 정말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감사가 우리 안에 내재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세상 사람처럼 헤롯 왕처럼 자신을 위한 기득권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감사로 영광을 올려 드리며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고 경배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박래언 장로

< 광주동노회장로회 회장, 광주수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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