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생명의 길을 따라온 걸음 정봉덕 장로 (25) 만남의 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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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천교회, 다툼 없고 교인들 사이 화목해

염천교회는 훌륭한 전통을 지닌 곳이다. 한국교회 중 65년이 넘는 지교회 역사에서 교역자 다섯 분을 모신 곳도 드물 것이다. 초대 김석찬 목사는 만주에서 오신 분으로 보수 정통의 신앙을 심어주신 분이다. 6·25 전쟁 때 피난을 가셨다가 다시 올라오지 않으셨다. 2대 김성수 목사는 덕과 겸손으로 교인들을 이끌며 10여 년 동안 시무하시다가 도원동교회로 가셨다. 3대 신현균 목사는 13년간 뜨거운 신앙의 열정을 전하시다가 성민교회로 옮기셨고, 4대 박위근 목사는 30년이 넘는 긴 세월 영천교회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다 은퇴하셨다. 현재는 박영근 목사가 5대 담임을 맡고 있다.

나는 염천교회에서 함께한 세 분의 목사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2대 김성수 목사는 내 결혼 주례를 서 주셨고, 3대 신현균 목사 때는 장로 장립을 받았다. 자녀들 3명은 4대 박위근 목사가 결혼 주례를 서 주셨고, 내가 총회에서 중요한 일을 할 때마다 나를 위해 많이 기도해 주셨다. 아내도 권사로 세움을 받았다.

염천교회 자랑을 하자면, 무엇보다 다툼이 없는 곳이라는 점이다. 한 교회에 담임 목사가 가고 올 때면 교인들의 입장이 갈리면서 내분이 일어나기 쉽다. 그런데 염천교회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교인들 사이가 화목하고 교회 안에 뒷말이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계성언, 최윤정, 정우, 계방언, 계도언, 정원식 장로 등이 초대 장로로서 교회를 바르게 섬겨 왔고, 계성안, 한선부, 김은실, 최윤구 권사님들이 심방과 전도,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변함없는 순종의 모습을 보였기에 교인들이 화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전도회의 순종의 전통도 교회를 화평하게 유지하는 데 힘을 실었다.

주거지역에 위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양적,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 주시고, 한 번도 다툼이 없던 곳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서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

1955년 10월부터 1993년 2월 28일까지 내가 총회에서 선교봉사 사역을 하는 동안 염천교회가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준 것에 대해 언제나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큰 은혜를 받아 온 나는 교인들에게 모범이 되었는지, 교우 들을 잘 섬겨왔는지 돌아보면 부끄러운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내 인생의 멘토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 잠시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이 길어져 그들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 오면서, 사람의 만남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감하게 되었다. 내가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지지하고 이끌어 준 신앙의 사람들 덕분이다.

내 이야기 속에 등장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고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한 시대를 지나며 함께 고민을 나눈 모든 사람들이 내게는 매우 소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를 빌어 특별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특별한 인연들이 있다. 먼저 군대에서 만난 김성묵 목사와 황금천 목사이다. 군종부장과 군종부 선임하사로 만나 나를 신앙의 동생으로 삼아 주신 김성묵 목사는 제대 후 갈 곳 없던 나를 거두어 주셨다. 그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황금천 목사는 군대에서의 인연을 잊지 않고 나를 총회 전도부로 불러 주신 분이다. 내가 총회 여러 부서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과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모두 황 목사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미국 유학 길을 열어 준 미국장로교(PCUSA) 김인식 박사도 빼 놓을 수 없다.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그는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고, 비행기 표까지 끊어 주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나의 사역을 돕는 데 진심을 다했다.

이삼열 교수도 내게 참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1963년 총회 간사로 있을 때 이 교수의 부친 이성찬 목사가 고등학생이던 장남의 미국행을 위해 총회장 추천서를 받으러 왔었다. 그것이 이 11월 교수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 그는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숭실대 교수로 왔고, 총회 사회부와 관계를 맺으며 박창빈 목사의 독일 팔쯔(Pfalz) 주교회 에큐메니칼 선교동역자 파송과 한아봉사회 창립을 도왔다.

치과 의사이자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인 박종삼 목사(월드비전 회장)는 예장 소속 교회의 사회복지와 디아코니아 활성화에 주력이 되어 주신 분이다. 또 내가 숭실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할 때 나의 지도교수이기도 했다. 박 목사를 처음 만난 것은 1979년이다. 박창빈 목사와 함께 복지시설 탐방을 위해 광주 보이스타운을 찾았고, 그곳에서 박종삼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후로 그는 ‘사회선교 지침서’ 초안과 ‘사랑의 현장 갖기 운동 지침’을 마련하여 노회별 사회선교 모임에 주강사로 와서 총회 사역에 동역하였다.

정봉덕 장로

<염천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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