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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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교회에서 맡고 있는 구역 호수가 짝수인 까닭에 백군이 된 성구는 전교인 체육대회가 시작되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내내 제켜 있다가 마지막 종목인 줄다리기에는 참가해도 좋다는 말에 얼씨구나 하고 뛰쳐 나왔다.

바로 등 뒤에 자리를 차지한 아내에게 마치 줄다리기 선수로 특별히 뽑힌 사람처럼 성구는 말이 많았다.

“발뒤꿈치를 땅에다 꽉 버티고 몸을 뒤로 제쳐야 하는 거야.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단김에 끌어대지 말고 처음에는 버티고만 있다가 상대편이 주춤할 때에 잡아 당기라구, 알겠오?”

“뒤로 제치면 몸이 쓰러지는 걸…”

“쓰러지긴! 다 잡고 있는데 왜 쓰러져요?”

몇 마디를 주고받는 사이에 팀 대표인지 감독인지를 맡은 노인 집사가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작전지시라며 외쳐댔지만 입만 움직이는 게 보일 뿐 한마디도 들리지를 않았다.

“자! 이쪽을 보세요. 이제 신호를 하면 잡아당기는 겁니다. 아시겠지요? 자!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동시에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줄이 튕겨지듯 공중으로 튀어오르자 쇠파이프처럼 곧게 뻗어 요지부동이다.

“영차!”

“영차!”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있는 소리를 질러 대며 안간힘을 다했다.

줄이 순간적으로 끌려오는 것 같더니 이번에는 반대로 당긴 것보다 갑절이나 넘게 앞으로 끌려 나갔다.

‘도대체 무엇들을 하는 거야 뒤로 제키라니까!’

성구는 입속으로 투덜대면서 있는 힘을 다해 당겼다. 그러나 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봐! 몸을 뒤로 제치면서 땡기라니까!”

아내의 발끝이 운동화 뒤꿈치에 와 닿자 성구는 소리를 질렀다.

“당기고 있어요 지금!”

아내의 목소리가 더 컸다. 숨이 차고 심장이 벌떡거렸다.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하늘 높이 울렸다. 그러자 청군 쪽에서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성구는 손을 털며 뒤돌아 섰다.

“여봐요. 뒤로 드러 눕다시피 하라니까!”

“제칠 수도 없어요. 끌려가는데…”

뭘 사정도 잘 알지 못하면서 소리만 버럭 버럭 지르느냐는 투의 볼멘 대답이다.

“아니 당신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백군이 다 마음을 합하면 된다는 얘기지 내 말은…”

성구는 어물쩍 말을 둘러대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성구로서는 마음이 찝찝했다. 30년 가까운 군인생활에 남은 것이라고는 지고는 못견디는 승리근성인데 첫판에 졌으니 성구로서는 분하기가 짝이 없었다.

“자! 이번에는 자리를 바꾸십시오. 청팀과 백팀이 자리를 바꾸시기 바랍니다.”

줄을 따라 이동을 했다. 어떻게 된 게 청팀의 남자들은 모두가 몸집이 좋은 청년층이 많아 보였다.

“이거 구역별 인원편성이 잘못된 게 아니야?”

(계속)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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