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지성] 십자군 전쟁 패배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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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Crusade War, 1096~1270)은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온 전쟁 중 가장 장기적 전쟁이었다. 200여 년에 걸쳐 7차례 전쟁이 있었으나, 소년 십자군까지 합치면 8차례에 걸쳐 일어났던 서방 기독교 세력과 동방 이슬람 세력 간의 전쟁이었다.

십자군 전쟁의 발단은 서방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성지순례할 때, 동방 셀주크 투르크 이슬람 세력들이 박해를 했기 때문이었다. 십자군 전쟁의 총사령관은 교황이었고, 서방 각국의 왕국이나 기사단을 중심으로 참여한 전쟁이었다. 당시 동방의 셀주크 투르크 세력에 비하면, 서방의 기독교 세력은 군사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기독교 세력이 동방의 셀주크 투르크 세력과 그 지원 세력에 패배한 것은 후세에 많은 교훈을 준다. 

서방 기독교 세력들이 실패한 첫 번째 원인은 각국의 기사단들이 효율적 지휘 체계하에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서방 기독교 세력들이 많은 수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을지라도 오합지졸의 전쟁 수행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전쟁이었다. 이슬람 세력들의 무모한 박해에 분노를 일으켜 서방 기독교 세력들이 전쟁을 일으킨 후, 제1차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 왕국(1099~1291)을 세우고, 제6차 십자군 전쟁 때 이슬람 세력의 혼란을 틈타 평화협정을 통해 예루살렘을 점령(1229~1244)했지만, 결국은 이슬람 세력에게 예루살렘을 다시 빼앗기고 말았다. 

두 번째 실패 원인은 장기 전쟁을 하다 보니, 동방 셀주크 투르크 이슬람 세력을 공격하고자 하는 분노와 열정은 줄어들고, 경제적 실리를 취하고자 하는 분위기로 전쟁의 목적이 변질된 것이다. 더욱이 십자군을 위해 교황청에서 면죄부(Indulgence)를 판매할 정도로까지 부패했다. 제4차 십자군 전쟁 때에는 십자군 병사들이 이집트를 통해 예루살렘을 공격할 계획을 베니스 상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진출해 그곳에 잠시 라틴제국(1202~1204)을 건설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십자군이 원래의 전쟁 목적을 상실하고 삼천포로 빠진 셈이다. 더욱이 십자군이 동로제국의 정치적 농간에 휘말려 콘스탄티노플로 가게 된 원인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변질된 십자군을 보고 청소년들이 분노를 일으켜 소년 십자군을 결성하여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다. 비록 실패는 했지만 정의감에 불타는 청소년들의 정신은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실패 원인은 동방 셀주크 투르크 세력이 무지막지하게 순례자들을 박해함에 따라 서방 기독교 세력들이 분노가 폭발했지만, 각국의 이해관계에 얽혀 단합된 전쟁 수행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상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국가적 위기가 도래했을 때, 정파의 이기주의와 분열주의를 지양하고 대동단결 정신을 발휘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아울러 명심해야 할 것은 십자군이 본래의 전쟁 목적을 상실하고 삼천포로 빠지는 목적 상실은 실패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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