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정 병장과 신 하사 그리고 두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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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6일 밤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났다. 해마다 이른 봄이 되면 유독 생각나는 슬픈 사연이 하나 있다. 천안함 전사자 46용사 중 한 명과 58명의 생존 장병 중 한 명, 그리고 이들의 어머니 이야기다.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46명의 해군 장병이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 58명의 장병은 죽음의 문턱에서 어렵게 살아왔다. 우리 국민들은 396억 원이나 되는 큰돈을 성금으로 보내주었다. 당시 성금 모금 주관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국민이 보내온 성금 대부분을 46용사 유족 위로금으로 전달하고 일부 성금으로 천안함재단이라는 공익재단을 만들었다. 저자는 해군과 아무런 인연이 없었지만, 성금 관리자인 이사장에 선임돼 6년간 자원봉사하는 마음으로 섬겼다.

아울러 매년 한 차례씩 46용사가 묻혀 있는 대전 현충원을 방문했었다. 그때마다 그중에서도 애틋한 사연을 가진 한 병사의 묘역에 꼭 들러 국화 한 송이를 놓고 묘비를 어루만져 주곤 했었는데 묘비 뒷면에는 병사 어머니의 피맺힌 사연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묘비의 주인공인 정모 병장은 20년 가까이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오다 해군에 자원입대했었다. 사고 당일인 2010년 3월 26일 밤 9시가 조금 지난 시점에는 천안함 앞머리 쪽 상황실에서 보초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때 사수인 신모 하사가 이렇게 말했다. “정 병장, 내일 새벽까지 보초를 서야하니 피곤하겠구나. 그래서 말인데 내가 몇 시간 보초를 대신 서줄 테니 내무반에 가서 눈 좀 붙여라.” “신 하사님, 고맙습니다. 그럼 저는 내무반에 가서 좀 쉬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곧바로 배 뒤편 지하 내무반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그로부터 10여 분 후 1천200t이나 되는 천안함이 순식간에 두 동강 났다. 상황실이 있는 배 앞머리 부분은 비스듬히 물 위에 누웠고, 내무반이 있는 배 뒤쪽은 깊은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신 하사는 죽을 힘을 다해 배에서 빠져 나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내무반으로 내려갔던 정 병장은 깊은 물 속에 가라앉았다.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었다. 겨우 죽음을 면한 신 하사는 지금껏 정신적·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외상후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또한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빠져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신 하사의 어머니는 날마다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아들을 위해 기도하며 울부짖는다고 한다.

한편, 짧디짧은 생을 마감한 정 병장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의 묘비에다 아픈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사랑하는 아들아! 많이 보고 싶구나. 그곳에선 부디 좋은 부모 만나서 사랑 받으며 못다한 공부, 마무리 못한 피아노, 하고 싶었던 택견, 꿈이었던 만화가, 못했던 데이트, 못 가본 여행, 가지고 싶었던 자동차…꼭 이루어보렴. 못난 어미가.”

자기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어머니의 절규 앞에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조용근 장로

 높은뜻푸른교회 

 극동방송 시청자위원장 

 국민일보 감사 

 석성세무법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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