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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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린 게 확실한데 고기는 아닌 것 같애.” “고기가 아니라니?”

어이가 없다는 듯이 순호를 바라다보면서 영호는 웃었다.

“큰 우럭이 걸린 게 아냐?” “아냐 천천히 움직이는 게 혹 거북이가 아닐까?” “거북이라구? 이리 줘봐 바닷사람이라야 알지!”

영호는 순호가 잡고 있는 낚싯줄을 잡으려고 몸을 굽히며 팔을 내밀었다.

이때였다. 갑자기 낚싯줄이 무서운 힘으로 풀려 나갔다.

“어! 어어!”

순호와 영호는 낚싯줄을 꽉 잡았다. 그러나 잡아 끄는 힘을 당할 수가 없었다. 순호의 몸이 비틀거리며 앞으로 굽었다. 영호도 함께 몸을 기울었다. 그러자 동시에 마치 나무토막처럼 공중으로 원을 그리며 두 몸이 바다로 떨어졌다. 여기까지는 기억이 분명했다.

순호는 울고 싶었다. 고작해야 만 평 정도밖에 안되는 이 섬에서 당장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전연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으란 법은 없는 것이다. 조금만 참으면 무슨 수가 있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치는 이치대로 생각과는 달리 겉돌았다. 초조한 가슴, 혀가 달라붙는 갈증, 꿈쩍않는 산처럼 현실은 사정이 없다.

‘낚싯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버틴다는 게 몸의 중심을 잃고 바다로 공중 나가떨어진 것이지. 그 순간 선체에다 이마를 받쳐 정신을 잃었던 게 틀림이 없어.’

생각해 봤댔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면서도 수십 번을 넘게 순간의 정황을 떠올려 보곤 했다.

‘이럴수록 침착해야 해! 나는 정신을 잃었을 때 이미 죽었던 거야. 다행히도 영호가 강제로 입혔던 구명조끼 때문에 죽음을 면했던 거지. 그런데 영호는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미련하게도 바닷사람이랍시고 끝까지 낚싯줄을 잡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렇다면? 다시금 불안이 밀물처럼 가슴속에 차 올랐다. 해는 어김없이 지고 있었다. 밤이 깊어 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바로 눈앞에 인천시가 보이는데. 나만 이렇게 무인도에 홀로 있으니 도대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해가 지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지 여기에 내가 있다는 것을 누구에게라도 알려야 한다. 그런데 핸드폰이고 라이터고 몽땅 물에 젖으면 안 된다고 미리 배에다 꺼내 놓았으니….

다시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아내는 웬일인가 하고 저녁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을텐데… 내가 인천으로 왔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데.’

순호는 불현듯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를 드리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보! 내가 지금 여기 아무도 없는 섬에 와 있어. 여기는 인천 앞바다야, 하나님이 전능하시다지 않았어? 간절히 기도를 드려봐?”

마치 옆 사람에 말하듯 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게 이렇게도 무능력하다니! 21세기 최첨단을 걷고 있다는 현대인이 졸지에 석기시대 이전의 원시인으로 돌아가다니!

“여보! 나 어떻게 안 될까? 내가 당신 말을 콧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것 정말로 잘못했어. 나도 지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테니까….”

목소리가 점점 기어 들어갔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저를 꼭 살려 주십시오 하나님!”

멀리 인천시가의 불빛이 바다 위로 쏟아져 내려 흔들리고 하늘에는 지난 밤처럼 별들이 새초롬히 얼굴을 내밀고 순호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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