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이야기] 김신조 목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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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조 목사는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18세부터 군 생활을 하다가 북한 정찰국 소속으로 선발되었다. 체력과 사상은 물론 우등생 군인 1만 명이 ‘박정희 대통령 목 따기’를 목표로 삼아 청와대와 구조가 비슷한 황해북도 도당 인민위원회 2층 건물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때부터 훈련의 목적은 오직 청와대까지 돌파하는 훈련을 매일같이 하였는데 실패하면 돌아오지 못하는 각오를 하였다. 1968년 1월 경기도 연천군 인근 38선 철조망을 뜯던 그 날 유독 날씨가 추웠다. 침투 도중에 민간인들을 자주 마주쳤으며 남한 군인과도 여러 차례 마주치기도 하였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던지기로 각오하였으며 위급할 시에는 주머니에 있는 수류탄으로 자폭해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내가 여기서 죽지 않으면 나의 부모와 가족을 북한 정권이 살해할 터이니 하는데 불쑥 부모와 형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내가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손들고 나오면 살려 주겠다”는 말이 들려와 손들고 투항하였다. 이때 생에 대한 애착은 기쁘기도 하고 고달프기도 하였다. 이유는 내 주변에 동료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면 북에 있는 나의 가족들을 모두 총살하고 우리 집은 폐허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남한에서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술과 담배에 찌들어 방랑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때 나는 인생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면서 매일 같이 지옥 같은 죄책감 속에서 허송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 아내의 믿음과 간절한 기도의 덕으로 나는 지옥의 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 후 신학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사명으로 삶의 보람을 느끼며 만족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김일성, 김정일의 죽음을 알고 독재자도 결국 죽는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때 사람은 누구나 생과 사의 갈림길을 스스로 택할 줄 아는 자유가 소중함을 생각하였다. 현재 여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목사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전부라고 하였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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