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예를 열거해 보면 신라에서는 ‘서기 71년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15년에 가뭄이 들어 서울과 지방의 죄수의 죄상을 살펴 사형에 처할 두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풀어주었다’, ‘296년 기림이사금(基臨尼師今) 13년에 왕이 병이 나서 오랫동안 낫지 않자 서울과 지방 옥에 갇힌 죄수를 사면했다’, ‘488년 소지마립간(招智麻立干) 10년에 일선군(一善郡)에 행차하면서 지나온 주군(州郡)의 옥에 갇힌 죄수 중에서 사형에 처할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풀어주었다’, ‘770년 혜공왕(惠恭王) 6년에 왕이 서경(西京)에 행차하면서 지나온 주현(州J課)의 옥에 갇힌 죄수를 곡사(曲赦)했다’, ‘886년 헌강왕(憲康王) 12년에 왕이 병(病)에 걸려 옥에 갇힌 죄수를 풀어주었다’ 등과 같이, 또 그 외에도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하고 은전을 베풀 때의 하교에 ‘(전략) 단지 영어(囹圄) 속에서는 읍고(泣辜)의 은혜를 입지 못하고, 가쇄(枷鎖)외의 괴로움을 받는 자가 경신(更新)의 은혜를 입지 못한다.
이 일을 생각하면 잠자리와 먹는 것이 편안하지 못하니, 마땅히 사면을 해 669년(문무왕 9년) 2월 21일 어둑어둑할 무렵 이전에 오역(五逆)의 사죄(死罪)이하로서 지금 구금되어 있는 자는 죄의 크고 작음을 논하지 말고 모두 석방하라 등등’이라고 했다. 왕은 다시 또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해 한반도를 평화롭게 해 장차 목숨이 끝나지 않도록 하는 때에 임해 지나간 업적을 자랑해 내린 유조(遺語) 가운데 ‘영어(囹圄)는 풀이 무성하다’라고 하는 말로써 감옥이 비어 잡초가 무성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과 같이 또는 진성여왕이 거인(巨仁)을 수금한 때의 사실에 대해 역사서에 ‘시정(施政)을 비방해 길에 내거는 자가 있어 대야주(大邢州)의 은거자 거인(巨仁)의 소행이라고 고하는 자가 있었다.
임금이 명해 거인을 경옥(京獄)에 구속하게 해 장차 형벌하려고 하자, 거인이 분(憤)해 감옥 벽에 쓰기를 “우공(于公)이 통곡하자 3년 동안 가뭄이 들고, 추연(鄒衍)이 슬픔을 머금으니 5월에 서리가 내렸네. 지금 나의 깊은 근심은 옛일과 같은데, 하늘은 말없이 창창할 뿐이로다” 했는데 그날 저녁에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며 우박이 내리니, 임금이 두려워해 거인을 석방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이, 신라에서 감옥을 설치한 것은 이로써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김성기 목사 <세계로교회>
한국교도소선교협의회 대표회장
법무부 사)새희망교화센터 이사장
대한민국새희망운동본부 대표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