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한 여론조사 기관이 2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누가 부모를 돌봐야 하는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기존 우리 사회의 정서로 보자면, 당연히 자녀가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대답이 압도적일 것으로 기대했다. 부모를 돌보는 것을 자식의 도리이자 윤리적 책무로 배우며 이를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 진리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조사 결과는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가장 많은 응답자가 “부모는 국가가 돌봐야 한다”고 답했고, 그다음은 “부모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반면 “자녀가 돌봐야 한다”는 응답은 가장 낮은 순위에 머물렀다. 이러한 결과는 청년 세대가 더 이상 전통적인 가족 윤리를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지 않으며 삶과 책임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 사회가 급속히 초고령화로 접어든 현실과 맞물리며 더욱 중요한 사회적 질문을 낳는다.
고령화는 단지 인구 통계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가정, 공동체 전반에 걸쳐 구조적인 재편을 요구하는 현상이다. 특히 교회는 이 변화 속에서 중요한 사명을 마주하고 있다. 고령 성도의 비율이 급속히 증가하는 현실 속에서 교회는 더 이상 단순한 신앙공동체로만 머무를 수 없다. 이제는 영적, 정서적, 육체적, 생활적 돌봄까지 아우르는 ‘전인적 돌봄 공동체’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이다.
먼저, 영적 돌봄은 노인 성도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찾아준다. 말씀과 기도, 찬양을 통한 교제는 그들에게 천국 소망을 붙드는 힘이 된다. 정기적인 성경공부 모임과 심방, 죽음을 준비하는 신학 교육은 그들이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평안으로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둘째, 정서적 돌봄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점점 단절되어 가는 노인들의 외로움을 보듬는다. 교회는 ‘신앙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제시함으로써, 이들이 소속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회상 사역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존중받는 경험은 자아 존중감을 높이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셋째, 육체적 돌봄 역시 필수적이다. 건강 상태를 점검하거나 병원으로의 이동을 도와주는 일,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찾아가는 예배는 돌봄을 넘어 일상과 신앙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낸다. 이는 삶의 연속성을 지켜주는 귀한 사역이다. 넷째, 생활적·경제적 돌봄은 노인들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생필품 지원, 식사 나눔, 심리 상담 등은 그들의 일상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연금이나 주거와 관련한 실질적인 정보 제공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 모든 돌봄이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신도 중심의 ‘라이프 케어 팀’같은 조직이 필요하다. 교역자만으로는 모든 사역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신도들이 주체가 될 때, 교회는 살아 있는 돌봄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다.
결국 ‘돌봄’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며 신앙의 구체적인 실천이다. 교회는 노인들이 고립되지 않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마음 놓고 늙을 수 있는 교회, 행복하게 천국 갈 수 있는 교회.” 그 길 위에서 교회는 진정한 본질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강채은 목사
<사랑교회, 前 한국교회노인학교연합회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