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실로암 안과병원을 설립하기까지 (3)

Google+ LinkedIn Katalk +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일이 있다. 1994년 1월, 아침 경건회를 마치고 지하 예배실에서 일층으로 올라오자 한 노인과 젊은 여자 분이 아기를 안고 현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몹시도 추웠다. 그분들을 원목실로 모시고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고부간이라고 소개하는 그분들은 먼 섬에서 3~4일이나 걸려 실로암 안과병원을 찾아왔다고 했다. 일년 반 전에 귀여운 아기가 태어났는데, 생후 7~8개월이 되자 아기 눈에 눈곱이 많이 끼고 동공이 빨개지더란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안과병원이 없어 동네에서 침을 놓는 노인을 찾아갔다.

무면허로 침을 놓는 그 노인은 아침저녁으로 소변을 받아 하루에 두 번씩 아기 눈에 넣어 주라는 처방을 해주었다. 그들은 그 노인 말대로 하루에 두 번씩 소변을 받아 아기의 눈에 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기의 눈은 치료되기는커녕 점점 더 이상해지고 충혈되어갔다. 

그들은 하루하루 염려하며 지내다가 극동방송에서 흘러 나오는 실로암 안과병원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고심하다가 결단한 후 실로암을 찾아왔다고 했다. 상담이 끝나고 아기의 눈을 세밀히 검사하기 시작했다. 결막염 시초였다. 만약 소변을 넣지 않고 정확하게 약만 투입했다면 깨끗이 치료될 눈이었다. 

그러나 소변 때문에 눈의 모든 조직이 녹아 버렸고 귀 고막까지 상해 뇌성마비까지 오고 말았다. 결국 세 가지의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되고 만 것이다.

진찰 결과를 안 할머니와 어머니는 하염없이 울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고 처절했다. 겨우 그들을 진정시켜 함께 기도한 후 작은 선물과 얼마간 여비를 손에 쥐어 주면서 아기가 성장하면 다시 오라고 했다.

지금도 그 엄마의 울음소리와 할머니의 몸부림치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한동안 그 일은 잠자리에서나 새벽 기도할 때나 언제 어디서든 내 머리에서 떠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나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농촌, 섬 지역 무료진료 시작

그로부터 얼마 뒤 기도 중에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았다. 농촌과 섬 지역에 가서 그곳 주민들을 위해 무료 안과 진료와 개안 수술을 하라는 명령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기를 통해 농촌과 섬 지역 무료 안과 진료와 개안 수술을 할 수 있는 사명을 주신 것이다.

그 후 이와 같은 문제를 놓고 계속 기도했다. 6개월이 흘렀다. 1994년 10월 어느 날, 뜻 있는 교역자들과 성도님들을 모시고 농촌과 섬 지역 안과 진료를 위해 조찬 기도회를 가졌다.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참으로 암담했다. 인력과 의료 장비들, 많은 약품들, 진료할 수 있는 차량 등을 어떻게 조달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의지하고 과감하게 시도했다. 너무나도 필요한 일이고 꼭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인지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

교파를 초월해 수천 장의 협조공문을 발송했으나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SBS 서울방송 문화재단을 통해 9인승 ‘벤’차량을 허락하셨고, 어느 교회에서는 100주년과 5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으로 이 일에 동참해 주었다.

이를 계기로 농촌과 섬 지역 무료 안과 진료와 개안 수술, 실명 예방을 위한 사역이 시작되었다. 1995년 3월 13일 실로암 안과병원 뜰에서 이 사역의 첫발을 내딛는 기도를 드렸다.

농촌과 섬 지역을 위한 무료 안과 진료는 95년 1회기를 시작으로 99년 현재 5회기가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무의촌 지역을 중심으로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