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려 벽을 쌓지만, 결국 그 벽이 자신을 가두는 역설적인 상황을 초래하곤 합니다. 이러한 ‘벽 쌓기’ 경향은 국제적 문제나 사회적 갈등 속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일례로, 갑자기 발표된 일곱 이슬람 국가 국민 추방 정책은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오던 이들마저 공항에 발이 묶이게 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은 예외라는 조항은 자칫 종교의 벽까지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판단은 오히려 거대한 벽을 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반대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워싱턴주 시애틀의 로버트 판사는 반이민 행정명령 집행을 잠정 중단하라고 결정했습니다. 70세의 공화당 소속 노판사인 그는 젊은 개혁가도, 현 정부에 반대하는 민주당원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용기 있는 결정 덕분에 발이 묶여 있던 많은 이가 미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곧 한 사람의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분열 또는 연결의 벽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결정이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듯, 잘못된 결정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했습니다. 이들은 이미 이스라엘보다 약 50~100년 먼저 해안 지역에 정착해 있던 사람들입니다. 당시 인구 증가로 새로운 거주지가 필요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을 걸어왔습니다. 이 전쟁에서 4천 명의 전사자가 나왔고 이스라엘이 패배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장로들은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오는 결정을 했습니다. 사실 전쟁터에 언약궤를 가져간다는 건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사용해 크게 승리한 지도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이 당시 지도자의 이러한 결정은 언약궤를 승리의 부적이나 액세서리처럼 여겼기 때문입니다. 언약궤의 등장은 오히려 그것을 본 블레셋 사람들을 더욱 결집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블레셋은 전력을 다해 맞섰고, 결국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빼앗기고 3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 일로 엘리 제사장은 충격을 받고 의자에서 넘어져 죽고 맙니다.
이 비극적인 결과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신들의 판단으로 언약궤를 가져오기로 한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에서 전적으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궤를 앞세워 나가는 것보다 백성이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혹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액세서리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같은 것을 사용하더라도 그것을 어떤 의미로 대하는지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