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경술극치 잊지말고 나라 더욱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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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 두 도시에 하나님의 불세례인 미국 전투기 B29는 원자탄을 한 개씩 던졌다. 히로히토 일왕은 무조건 항복을 했다.

우리 짚신겨레는 34년 11개월 14일의 일제 압박과 설움에서 벗어났다. 광복의 감격을 누렸다. 금방 남북분단 그 비극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올해로 115주년을 맞는 경술국치의 망국이 없었다면 올해 80주년을 맞는 광복절도 필요없다.

해마다 8월 달력에 15일 빨간표시의 광복절은 잘 표시되어 있으나 1910년 8월 29일 반만년 역사가 끊기고 나라가 일제에 망한 비운의 그 날짜는 무심하게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은 갇혔던 감옥문에 “용서는 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로 기록해 두었다고 한다. 1941년 12월 8일 미국 하와이 진주만 폭격으로 큰 피해를 당한 미국은 “상기하자 진주만” 구호를 가슴에 새기고 전열을 새롭게 강화해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소련 등이 연합해 세계2차대전에서 일본 이탈리아 독일을 물리치고 세계 평화를 이룬 것이다. 우리 한국은 원흉 이등박문이 을사오적 이완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 이지용을 앞세워 을사보호조약이라는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고종은 황실 고문 헐버트에게 고종은 동의한바 없다고 미국정부에 보고해 달라 했다. 1907년 7월 24일 이준, 이위종, 이상설 세 특사를 헤이그에 보낸 것을 구실 삼아 고종을 퇴위시키고 이등박문 이완용간에 정미 7조약을 체결했다. 이해 8월 1일부로 9천 명의 조선군대를 해산했다. 고종 퇴위와 군대해산에 분노한 의병들이 전국적으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전명운, 장인환 의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친일파 미국인 스티븐슨을 암살시켰다.(1908) 

조선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권총에 암살되었다. 이등박문 죽음으로 한일합방이 지연되자 매국노 이완용, 일진회 친일파 송병준, 이용구 등이 한일합방을 촉구했다. 통감부 고마쓰 외사국장은 일본의 한일합방은 진행 중이라 말하고 자기가 쓴 <조선병합이면사>에서 그물도 치기 전에 물고기가 뛰어 들었다고 했다. 

조선통감부는 일본군대 2개 사단 정도를 장안에 풀어 철저 감시 속에 융희(순종) 4년 8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명치 43년 8월 22일 통감 자작 사내정의(데라우치)가 두 나라 협약을 했다. 뒤에 고종은 어인을 찍지 않았다. 순종도 안 찍었다고 고백했다. 두 임금은 한일합병은 무효라는 것이다. 8개 조약 중 일부를 보겠다. “한국 일본 양국 폐하는 양국간 특수하고 친밀한 관계와 동양평화를 위해 합병(合倂)함이 옳음. 제1조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정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하고도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 한글겨레로서 치가 떨리는 조약이 아닐 수 없다. 이로서 27왕 519년의 조선이 망했다.

반만년 대한제국의 역사가 단절된 것이다. 일본은 당시 조선 의병이 두려워 일주일 미루었다가 순종 칙문 발표로 한국과 일본이 합병된 것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9명의 조선총독부가 약 35년간 우리 성 이름 말 글 얼까지 다 빼앗아가며 압제를 준 것이다.

젊은이들이 일본 전선 총알받이로 끌려가고 어린 처녀들이 일본군 정액받이로 끌려갔다. 우리에게 압박과 설움을 준 일제 만행을 어찌 우리 다 잊겠는가. 이스라엘 국군묘지 기념판에 ‘과거를 망각한다는 것은 또다시 나라를 잃게 만드는 것이요, 과거를 기억 한다는 것은 곧 구원의 비결이다’라고 쓰여 있다. 왜 우리는 경술국치를 잊으려하는가. 8월 29일 국치일 달력에도 표시해 두고 교과서에도 밝히고 나라사랑일로 상기해 온 국민이 경술국치를 뜻깊게 보내야 하겠다.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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