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는 1908년 8월 31일 여름에 한힌샘 주시경(1976-1914) 선생이 제자들과 함께 신촌 봉선사에서 국어연구학회라는 이름으로 설립했다. 제자 중에는 외솔 최현배(1894-1970) 한결 김윤경(1894-1969) 등이 참여했다.
1980년대 초에 한글모죽보기라는 학회 회의록 책이 발견되어 그간 조선어연구회가 1921년 12월 3일에 설립되어 이날을 한글학회는 창립기념일로 지켜왔다. 그러나 한글모죽보기 기록에 따라 1987년 8월 31일부터 한글학회 창립된 기념행사를 베풀어 올해로 117년 역사와 전통이 깊은 학술단체로 발전해가고 있다. 세종대왕의 뜻을 받잡고 우리 말과 글과 얼로 나라의 독립을 지키자는 주시경 선생은 남대문 상동교회 전덕기(1875-1914) 목사가 세운 청산학원 국어선생을 하면서 독립정신으로 국어연구학회를 만들고 뒤이어 배달말글몯음(1911), 한글모(1913)로 학회 이름을 바꾸며 우리글 이름도 하나밖에 없는 우리 나라 큰글이라는 뜻의 한글로 지으셨다.
우리 말글을 지키려면 국어사전이 필요함으로 말모이 사전을 계획하고 추진해오다가 갑자기 1914년 여름에 별세하셔서 말모이편찬이 중단되었다. 그후 몇 년 쉬다가 1921년 12월 3일 조선어연구회가 우리 말글사전편찬을 깨닫고 1929년 10월 31일 독일유학생 출신 이극로(1893-1978) 중심으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했다.
학회 이름을 조선어학회로 바꾸고 이극로가 회장이 되어 13년간 조선어사전편찬을 준비해 왔으나 1942년 일제가 조선어학회사건을 만들어 이극로 최현배 김윤경 장지영 정인승 이희승 등 33명을 치안유지법으로 기소했다.
조선어큰사전은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이극로(6년), 최현배(4년), 이희승(2년 6개월), 정인승(2년) 등의 학자들이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으며 함흥감옥에서 풀려나와 1949년 9월 25일 조선어학회를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한글사랑 나라사랑 정신으로 최현배 한글학회 이사장 중심의 피와 땀으로 6권이 발행되었다.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이윤재(1888-1943), 한징(1986-1944) 두 분은 옥사하시고 그 밖에 이인(1896-1979), 장지영(1887-1976), 이병기(1891-1968), 정태진(1903-1952), 안재홍(1891-1965), 김선기(1907-1992) 등 기소된 33명이 모두 옥고를 치른 것이다. 일제시대 한글학회는 한글맞춤법통일안(1933), 조선어표준말모음(1936) 한글가로 풀어쓰기안 채택(1937), 조선말큰사전 판짜기 시작(1942) 등 국어정리사업을 했다.
광복 후 최현배 선생은 한글가로짜기 한글교과서로 한글세대에게 국어교육을 실시했다.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수난을 겪은 안호상(1902-1999), 이은상(1903-1982) 인사들의 한글사랑 공로도 컸다. 일제 친일교육을 받은 일부 국한혼용용자들의 한글전용반대가 극심했으나 한글학회 이사장 최현배 선생 뒤이은 허웅(1918-2004) 이사장 지도로 다 막아냈다. 바야흐로 한글시대다.
가장 빠른 과학글자 한글이 앞으로 세계문화를 지배할 것이다. 한글세대가 푸른 숲으로 물결친다. 117돌 생일 맞는 한글학회는 한결같이 자주 민주 문화 세종정신으로 한글나라 온 세계에 길이 빛내야 할 것이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