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그의 만년(晩年)에 이르러 두 아들에게 간곡하게 일러준 말이다.
내가 벼슬하여 너희들에게 물려줄 밭뙈기 정도도 장만하지 못했으니 오직 정신적인 부적(符籍=재앙을 막고 악귀를 쫓기 위한 글씨조각), 두 글자를 마음에 지녀서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너희에게 물려주고자 한다. 너희들은 이 애비가 너무 야박(野薄)하다 하지마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다른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부지런함[勤]’이란 무얼 뜻하겠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에 할 일을 저녁으로 미루지 말며,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도록 하고 비오는 날 해야 할 일을 맑은 날까지 미루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검(儉)’이란 무엇일까? 이 글자는 ‘검소함’을 뜻한다. 예컨대, 의복이란 몸을 가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고운 비단으로 된 옷이야 조금이라도 해지면 세상에서 볼품없는 것이 되어버리지만 텁텁하고 값싼 옷감으로 된 옷은 약간 해진다 해도 볼품이 없어지지 않는다. 한 벌의 옷을 만들 때 앞으로 계속 오래 입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생각해서 만들어야 하며 곱고 아름답게만 만들며 빨리 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라도 입안으로 들어가면 더러운 물건이 되어버린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귀하다고 하는 것은 정성 때문이니 전혀 속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단 한 가지 속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자기 ‘입’과 ‘입술’이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생각하며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 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해야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맛있고 기름진 음식만을 먹으려고 애써서는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보는 일이 힘들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어려운 생활처지를 극복하는 방편만이 아니라 귀하고 부유하고 복이 많은 사람이나 선비들이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유지해가는 방법도 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이 글에서 다산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물질적인 유산이 아니라 정신적인 유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본다. 유산(遺産)이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물려주는 것’을 말하는데 흔히 사람들은 유산을 돈이나 부동산 같은 것에만 국한해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유산이란 물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체적, 사회적, 정신적, 영적 감정적인 것, 나아가 부모의 삶의 태도들까지도 ‘유산’으로 물려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어릴 때 아버지와 목욕탕에 갈 때 아버지가 머리에 수건을 매고 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40대 후반이 된 어느 날 목욕탕에 들어갔는데 자기 머리에 수건을 매고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자녀는 알게 모르게 부모를 닮는다. 부모의 얼굴을 닮고, 걸음걸이까지 닮는 경우를 우리가 본다.
삶의 태도와 방식도 ‘대물림’ 현상이 일어난다. 구약성경의 아브라함과 이삭의 역사에서도 닮은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거짓말했는데, 아들 이삭도 아버지처럼 자기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거짓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야말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부자였고 그 아들 이삭도 부자였으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의 사람이었고 이삭도 신앙의 사람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았는데 이삭 역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최고의 유산은 무엇인가? 1970년대 독일에서 어느 부호가 모든 재산을 사회복지재단에 기증했는데 다섯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아서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묻자 제일 큰아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도시락 가방 하나를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늘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밤마다 기도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 ‘기도의 유산’은 보이는 유산보다 더욱 ‘값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믿는 가정에서는 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