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이야기] 애국지사 윤동주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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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만주 간도성 화룡현 명동에서 명동학교 교장이었던 윤영석의 맏아들로 태어난 간도 이주민의 3세다. 함경도에 살던 증조부께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간도로 이주했다. 1900년 장로였던 할아버지 윤하현에 의해 이사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신앙으로 자라면서 항상 창작에 몰두했다. 그는 1932년 용정에 있는 기독교학교에서 문예활동과 웅변대회에서 1등을 했다. 4학년 때 평양 숭실학교에 편입해 기독교적이며 민족적인 분위기에서 열심히 문예활동에 심취했다. 20세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학교가 폐교되어 용정으로 다시 돌아와 광명학교에 편입해 문익환, 장준하, 정일권 등과 같이 공부했다. 당시 윤동주의 시는 화려하고 누가 읽어도 공감하는 순수한 표현으로 감동을 주었다. 

그 후 1938년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해 최현배 선생에게 한국문학을 배웠으며 정지용 시인의 표현법을 접목했으며 이양하 교수에게 영문학과 영시를 배웠다. 1942년 일본 유학을 가서 도시사(同志舍) 대학 영문과에서 수학했다. 그런데 1944년 1월 19일 교토(京都) 지방 재판장이 치안유지법 제5조 위반(독립운동) 협의로 징역 2년을 언도받았다. 그리고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년 후 1945년 2월 16일 인생을 마감했다. 

판결문에 의하면 “윤동주는 어릴 때부터 민족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사상적 문화적으로 심취되어 민족의식을 갖고 일본에 깊은 원망을 품고 조선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는 활동을 했다”고 기록되었다. 장례식은 용정중앙감리교회에서 문재진 목사의 집례로 거행되었다.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는 윤동주에게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그는 민족의 비애를 가슴에 안고 살아온 시인이다. 그가 남긴 100여 편의 시는 순수하고 참다운 인간의 본성을 잘 표현했고 우리에게 맑고 깨끗한 정다운 영혼을 심어 주었다. 일제의 강점기에 억울한 현실에서 해방을 보지 못하고 가셨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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