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노벨위원회》로부터 역대 노벨상 수상자로 확정통보를 받은 사람 중에서 노벨상을 사양하거나 거절한 사람은 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태생의 극작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 프랑스의 실존주의 사상가 ‘샤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 그리고 러시아의 소설가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 1890-1960)’가 그들이다. ‘버나드 쇼’는 처음에는 상을 안 받겠다고 했다가 결국 상을 받았고, ‘파스테르나크’는 처음에는 받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사양했으며 ‘샤르트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 받겠다고 해 끝내 상을 거절했다고 한다.
1958년 말,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화제의 신문기사가 생각난다. 『닥터 지바고』의 작가로 유명한 ‘파스테르나크’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통보를 받고 처음에는 받을 뜻을 표시했다가 종국에 가서 수상을 사양한 것이 1958년 가을이었다. 그해 연말 모스코바의 어느 송년음악회에 참석한 ‘파스테르나크’가 서방기자들의 눈에 띄었다. 인터미션(중간휴식)이 되자, 기회를 놓칠세라 기자들은 녹음기를 들이대며 “왜 노벨상을 거절했습니까? 정치적인 이유입니까?”하며 질문을 쏟아 붓자, ‘파스테르나크’는 “나는 지금 음악에 도취되어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참으로 지혜로운 임기응변(臨機應變)이었다.
학부 영문과 재학시절, ‘버나드 쇼’의 희곡작품을 공부한 기억이 있어 그의 이름은 위의 세 사람 중에 다른 두 사람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그의 유명한 묘비명 “우물쭈물 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표현은 생각해 볼수록 재치가 돋보이는 말이다. 그 짧은 한 마디의 행간(行間)에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시사성(示唆性)이 크다. 인터넷에서 찾아 본 그 묘비에 적힌 영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에 나온 “stay around”의 표현은 ‘서성대다,’ ‘늑장을 부리다’의 뜻이므로 ‘stay around long enough’의 의미는 ‘오랫동안 늑장을 부리다’의 뜻이 된다. 그런데 영문의 뜻인 “오랫동안 늑장을 부리다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지”보다는 “우물쭈물 하다 이럴 줄 알았지”란 우리말 해석이 더 묘미와 감칠맛이 난다.
학창시절이 아득한 옛날이 되어버린 요즈음도 나는 이따금 꿈속에서 시험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로 교실에서 쩔쩔맬 때가 있다. 기실, ‘꿈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왕왕 현실 속에서 오래전에 계획된 일을 몇 차례 ‘다음에 하지!’ 하다가 결국은 그 일이 코앞에 닥치고 나서야 ‘이를 어쩌나!’하는 경우가 있다.
‘버나드 쇼’는 만 나이로 94세를 향수(享壽)했으니 장수한 사람이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왜 수많은 표현 중에 하필이면 그 말을 자신의 ‘묘비명’으로 해달라고 유언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 모르기는 해도 무관심하게 그리고 준비성 없이 살아가는 후학들에게 아주 기본적이고도 요긴한 교훈이 들어있는 메시지를 물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이 죽고 나면 자신의 삶에 대한 ‘묘비명’을 남긴다. ‘헤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오.”라는 묘비명을 남겼고 ‘박인환’ 시인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으며 ‘김수환’ 추기경은 “나는 아쉬울 것 없노라”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런데 한국의 슈바이처라는 별호를 가진 ‘장기려(張起呂, 1909~1995)’ 박사는 “주님을 섬기다 간사람”이라는 묘비명을 남겼다.
장 박사는 현직에 있을 때, 병원에 갈 형편이 못되어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부산에 천막을 치고 복음병원을 세워 행려병자(行旅病者)를 치료해준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의과대학을 들어갈 때, “이 학교에 들어가게 해 주시면 의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어느 날 농촌의 한 아낙네가 중병에 걸려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비를 낼 수 없어 밤새 고민하다가 병원장실을 찾아와 도와달라고 애걸하니 ‘장기려’ 박사는 그 환자에게 “기회를 봐서 ‘환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병원을 탈출하라”고 귀띔해 주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그는 바보 천사임에 틀림없는 의사였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고이 잠든 그의 묘비에 적힌 “주님을 섬기다 간사람”이라는 소박한 비문(碑文)이 우리의 가슴을 부끄러운 땀으로 젖게 한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