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기독교단의 찬송가에 이런 가사가 있다. “아, 쓸모없는 존재.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주님의 발아래 엎드릴 뿐, 이 깨지기 쉬운 텅 빈 그릇 주님 손에 쓰임 받길 바랄 뿐이네.” 인간을 쓸모없는 것 “깨지고 텅 빈 그릇”으로 여긴다. 또 자기를 마른 막대기(애4:8)요, 벌레만도 못한 자(욥25:6/시22:6)라고 고백하는 이도 있다. 겸손의 극한 표현이겠지만, 지나치면 자존감(자아 존중감)이 떨어져 자기를 사랑하지 못한다(마22:37-40). 신약 성경에는 인간을 자유와 기쁨, 용기와 활력이 넘치는 존재로 본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모신 의미 있는 존재가 되라고 환경과 맞서 싸우고 개척하라고 기쁨과 용기와 활력으로 충만한 삶을 살라고 가르치고 있다. 자신은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살라고 한다. 생명과 용기와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세상을 살고 간 선배 시민들의 가르침을 통해 간접 경험을 넓혀가 배움의 효율성을 높여나가기 바란다. 내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시간상, 공간상 제한돼 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기록을 통해 선배 시민들의 경험과 각성을 간접 경험으로 배워보자. ①온고지신(溫故知新)-<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가히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고전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남의 스승이 될 수 없으며 고전을 공부하면서 거기에서 현재와 미래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도리(원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당부다. 비슷한 의미로 <예기>의 ‘학기편’에도 좋은 말이 나온다. “기문지학(記問之學)만으로는 남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하다.” 기문지학이란 보고 들은 식견 또는 고전을 읽어 기억만 하는 피상적 지식을 의미한다. 즉 단순히 지식을 암기한 것에 불과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문으로는 남을 가르칠 수 없다는 말이다. 서양 속담에 “내가 너에게 레몬을 주면 너는 나에게 주스를 내놓아라.”는 말이 있다. 누에에게 뽕잎을 먹이면 그 누에는 명주실을 내놓아야 되는 것이다. 어떤 지식을 익히고 나면 나 자신이 변화되어 있어야 남을 가르칠 수 있다. 오늘날 각 교회에서 설교가 너무 많이 생산된다. 그러다 보니 배우다가 일생을 다 쓴다. 예수 알아가다가 한 생을 마친다. 이제 예수 닮아가기에 이르러야 한다. 이것은 목회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자기 눈앞으로 교인을 부르는데 골몰한다. 공예배와 새벽예배 출석을 강권한다. 그런데 교인들은 목회자와 달리 생업이 있고 직장이 있다. 예배 마칠 때마다 이제 1주일(월-토) 동안 여러분 가정과 직장 및 사회에서 작은 예수로, 예수의 형제로, 예수의 대사로, 예수의 메시지로 열심히 살고 성공하고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할 수 없을까? 목회자 눈으로 확인하려 하니까 내보내지를 못하고 교인들을 교회 안에 묶어두는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도 세속 직장생활을 몇 년씩 해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심장을 중심으로 정맥피가 모이는데 새로워진 피가 동맥피로 전신에 퍼져나가 일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구심성으로 모이기만 하고 원심성으로 내보내지 못하면 결국 심장이 터져 죽고 만다. 현대 교회가 가나안 교인이 34% 이상이고 이곳저곳 교회를 쇼핑하는 Floating Christian(일명 난민 신자)이 늘어나는 이유를 목회자들은 곱씹어 생각해야 한다. 엄마 젖으로 만족하지 못하니까 다른 엄마 젖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이단으로 가는 경우). 집밥에 만족하지 못하니까 자꾸 외식하러 나가고 유튜브 교인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에 영상 예배를 경험한 교인들은 이제 일정한 장소에 나와서 만족하지 못하는 예배를 꼭 드려야 되는가를 묻고 있다. 더 나가기 전에 목회의 방법(특히 설교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닭 모이 주듯이 일방적으로 던지는 설교는 왕왕 오차를 범하게 된다. 등허리가 가려운 사람에게 앞가슴을 긁어대면 그가 시원함을 느낄 수 있겠나? 심방을 갈 수 없으면 기도 제목이라도 수집하고, 간접적으로라도 신자들의 욕구와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설교를 준비하고 설교에 대한 체계적 피드백을 받아야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설교가 예수 알아가기에서 예수 닮아가기(생활 신앙)로 빨리 바뀌어야 한다.
김형태 박사
<더드림교회•한남대 14-15대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