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하늘나라 네 시어머니가 ‘문자’를 안 받아!”

Google+ LinkedIn Katalk +

여기 올려드리는 글은 「올바른 휴대전화사용 문화캠페인」 수기공모에서 1등으로 당선된 ‘손현숙’씨의 글이다. 오늘의 ‘신앙산책’에 옮겨 싣는다.

내게는 핸드폰 두 대가 있다. 한 대는 내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나라에 계신 시어머님의 것이다. 내가 시부모님께 핸드폰을 사드린 건 2년 전. 두 분의 결혼기념일에 커플 핸드폰을 선물했다. 카톡 문자 기능을 알려 드리자 두 분은 며칠 동안 끙끙대시더니 서로 문자도 나누시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지난 3월 시어머님이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셔서 유품 가운데 핸드폰을 내가 보관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한 달 정도 지날 무렵. 아버님이 아파트 경비 일을 보시러 나가신 후, “까똑”하고 어머니 핸드폰에 문자가 들어왔다. 시아버님이 보내신 문자였다.

“여보, 오늘 경비는 ‘야간 조’이니까, 저녁은 어멈이랑 맛있게 드시구려.” 순간 난 너무 놀랐다. 혹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아버님에게 치매 증상이 오신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함이 몰려왔다. 그날 밤 또 문자가 왔다. “여보, 날 추운데 이불 잘 덮고 자구려. 사랑하오.”

남편과 나는 그 문자를 보며 크게 걱정을 했고 남편은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아버님은 그 후 “여보, 비 오는데 우산 가지고 마중 가려는데 몇 시에 갈까요? 아니지. 내가 미친 것 같소. 보고 싶네.” 라는 문자를 끝으로 한동안 메시지를 보내지 않으셨다.

그 얼마 후부터는 내 핸드폰으로 문자 왔다. “어미야, 오늘 월급날인데 필요한 거 있니? 있으면 문자 보내거라.” 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네, 아버님. 동태 2마리만 사오세요” 하고 답장을 보냈다. 그날 저녁 우리 식구는 아버님이 사 오신 동태로 매운탕을 끓여서 맛있게 먹으면서 아버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묵묵히 경청했다.

“아직도 네 시어미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구나. 그냥 네 어머니랑 했던 대로 문자를 보낸 거란다. 답장이 안 오더라. 그제야 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걸 알았다. 모두들 내가 이상해진 것 같으니 내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던 것도 안다. 미안하다.”

그날 이후 아버님은 다시는 어머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지 않으신다. 요즘은 내게 문자를 보내신다. 지금은 나도 아버님께 문자를 보낸다. “아버님. 빨래하려고 하는데 아버님 속옷은 어디다 숨겨 두셨어요?” 

위에 올려드린 현숙씨의 글 중에서 마지막 구절 “아버님, 빨래하려고 하는데 속옷은 어디에 숨겨 두셨어요?” 이 부분은 며느리의 시아버지에 대한 조심스런 배려가 고맙게 느껴진다. 그 시아버님은 정말 천사 같은 착한 며느리를 두셔서 행복하시겠다. 효부상(孝婦賞)을 드린다면 현숙씨가 적임자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시아버님의 정 깊은 말씀과 행동은 글을 읽는 같은 노인들에게도 귀감(龜鑑)이 된다. 

본 수기의 내용을 읽다보면 우리 노인들은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자성(自省)하게 된다. 현숙씨 시부모님은 정말 ‘잉꼬부부’이셨던가 보다. 고인이 된 아내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그 애틋함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생전에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되고 홀로 되신 어른에게 깊은 연민(憐憫)의 정을 느끼게 된다. ‘휴대 전화’라는 물건이 그토록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媒體)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성경에는 ‘인생’을 가리켜 ‘나그네 길’이라고 했다. 애굽(이집트)의 바로 왕이 야곱에게 “당신의 나이가 몇이시오?”하고 물었을 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대답했다. 이렇듯 야곱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나그네 길’에 비유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본향인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하늘나라를 향해가는 순례자요, 나그네들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나그네들이다. 나그네 인생길을 가면서 우리의 목표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천국을 향한 행진은 멈추거나 포기하거나 좌로나 우로 치우쳐서는 안 될 일이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사모하고 바라보며 살았다. 아브라함은 연세 드신 믿는 이들이 실로 닮고 싶은 바람직한 ‘모형(模型)’이라 하겠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