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의 문학산책] 생명의 언어, 죽음의 언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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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 ①

나의 시적 자아는 항상 새로운 세계를 동경한다. 가보지 못한 세계로의 탐험을 꿈꾼다. 보일 수 없는 미지의 세계, 미래와의 마주침을 고대한다.

이러한 것들을 시적 상상력이라고 한다.

시적 상상력, 미래에의 집요한 기대 심리가 작용한다. 우리들의 오늘, 아주 소중한 시간인데 엉뚱하게도 현대인은 내일, 또 내일에만 기대한다. 흔적 없이 쉬 사라질 오늘을 무상하게 보낸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이를 허무 의지 혹은 허위 의식적 의지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시적 상상력은 위대한 것이다.

인간은 유토피아를 꿈꾸고 바란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벽한 세상을 뜻한다. 희랍어로 유토피아는 ‘없다’와 ‘장소’가 합성된 낱말로써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것이 본뜻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기다리는 유토피아는 한낱 공상적인 이상향을 동경하는 것이 아닌가. 헛된 소망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기대하는 행복한 삶, 인간성의 가치지향적 이상 따위엔 한계가 없다. 다다익선인 것이다. 이처럼 탐욕적이요 사치성의 허위 의식적 인격이 우리 속에 숨겨져 있다면, 우선해서 오늘의 시간적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에덴동산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淨土)의 세계는 실제 지상 세계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이다.

내일이라는 미래에의 갈망은 결과적으로 삶의 허무감만을 안겨 준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인간이 기대하고 소망하는 미래 지향성 기대치는 현재라는 실존 상황에서 여지없이 시간과 더불어 사라진다.

‘고도’는 기다리는 가공의 인물이거나 환상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두 인물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현존하는 존재이기보다는 내일의 도래, 즉 유토피아의 도래를 꿈꾸는 허상(虛像)과도 같은 존재이다. 블라디미르가 모자를 벗었다가 다시 쓰는 행위의 반복,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몸짓과 표정은 한 편의 그림 언어요 무언극의 압권이다. 또 한 사람은 구두를 벗었다가 다시 신는 제스처로 그의 빈 신발 속에서 허무와 절망 따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음은 그들의 대화의 한 장면이다.

에스트라공: 자, 가자

블라디미르: 갈순 없어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여기가 확실한가?

블라디미르: 뭐가?

에스트라공: 기다려야 할 곳이 여기가 맞느냐구

에스트라공: 만일 안 온다면?

블라디미르: 내일 다시 와야지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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