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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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기업인이며 유명한 강철왕인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는 젊은 시절, 세일즈맨으로 이집 저집을 방문하며 물건을 팔러 다녔습니다. 어느 날 한 노인 댁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집을 들어서자마자 카네기를 완전히 압도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 집의 벽 한 가운데 걸린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은 황량해 보이기까지 한 쓸쓸한 해변에 초라한 나룻배 한 척과 낡아 빠진 노가 썰물에 밀려 흰 백사장에 제멋대로 놓여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하단에는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카네기는 그림과 글귀에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집에 돌아 와서도 그는 그 그림으로 인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노인 댁에 찾아가 그 노인에게 부탁하기를 세상을 떠나실 때에는 그 그림을 자신에게 꼭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

그의 간절한 부탁에 결국 그 노인은 그 그림을 카네기에게 주었습니다. 카네기는 그의 사무실 한가운데에 그 그림을 일생동안 걸어놓았습니다. 그 그림에 적힌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는 메시지는 카네기의 일생을 좌우한 굳건한 신조(信條)가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썰물의 때가 있으면 반드시 밀물의 때가 옵니다.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이 있고, 밤이 있으면 낮이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오늘이 썰물같이 황량하다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곧 밀물의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내리막길이라고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리막길 끝에 오르막길이 있어 높이 오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가 흑암이라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밤이 깊으면 곧 동이 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꿈을 품고 사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미래가 밝아집니다. 반면에 꿈이 없는 사람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삶이 불안하고 무의미해집니다. 꿈을 소유한 사람은, 현재에 머물러있지 않고 미래를 향해 삽니다. 꿈은 평범한 한계성을 뛰어넘어 놀라운 가능성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꿈을 품은 사람은 항상 희망을 말하고 비전을 바라봅니다. 

주님이 어느 날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간 투병해온 중풍병자 한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당시 이 연못가에는 다양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그 연못에는 가끔 천사들이 내려와 물을 움직이는데 그때 맨 먼저 들어간 병자는 어떤 병이든 낫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연못가에는 많은 병자들이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주님이 어느 날 그 현장에 나타나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 고쳐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그 환자에게 찾아간 과정을 보면 마치 사전에 약속한 듯이 그를 찾아가셨습니다. 그 사람은 지난 38년간 누워있었지만, 단 한 번도 자기 삶을 체념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낫고자 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그를 찾아가실 때까지도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그의 현실적인 조건이나 환경은 가장 열악(劣惡)하고 경쟁력이 전혀 없던 사람인데, 그런 절망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희망의 끈을 지키려는 의지는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결국 주님이 허락해 주심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누워 있는 베데스다 연못가로 주님이 오셔서 절망적인 상황을 급반전(急反轉)시켜 주시니까요. 그가 희망을 접지 않았기에 주님이 그 현장에 오셔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가라”고 그에게 구원을 선언하십니다. 그 병자의 간절한 의지와 희망이 주님의 위대한 선언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명령보다 더 황당한 사건은 없을 것입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아브라함의 태도입니다. 그는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이삭의 목을 향하여 칼을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아들이 죽는다 해도 하나님이 능히 다시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접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더 크게 놀라서 급히 “아브라함아!”라고 부르시며 ‘이삭’ 대신 ‘숫양’을 내어주십니다. 여기 아브라함에게서 우리는 《여호와 이레》의 믿음을 봅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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