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코니아] 가지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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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을 산책하다 보면 가을이 깊어졌음을 느낍니다. 겨울이 가까워질수록 나무들은 그렇게 풍성함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을 아낌없이 떨어뜨리며 오직 앙상한 가지만을 남기고 있습니다. 무서울 만큼 철저히 모든 것을 떨어뜨리는데 왜냐하면, 그 철저한 비움만이 그 이듬해에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지혜임을 나무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500여 년 전, 종교개혁 전야의 유럽은 극심한 빈부 격차와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당시 봉건제도 사회의 경제조직이었던 장원(莊園)에서는 영주가 엄청난 부와 권력을 소유했습니다. 더욱이 영주가 주교의 직책까지 겸임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한 사람이 정치와 종교의 권력을 모두 장악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농민(농노)은 영주의 재판권 아래 군역과 납세의 의무를 졌고, 그들의 삶은 영주 소유물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억압적인 상황 속에서 부유한 영주들을 비판하며 청빈 사상을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했습니다. 성 프란체스코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가난한 것이 복되다는 인식이 사회에 퍼졌지만, 정작 사회 개혁과 변화를 주도해야 할 주축들은 수도원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한쪽은 극도의 부를 축적하고, 다른 한쪽은 청빈을 부르짖는 극단적인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흑사병과 십자군 전쟁 등으로 인해 노동력이 급감하면서 사회의 생산성은 급속도로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혼란과 빈곤 속에서도 종교 지도자들은 성 베드로 대성전 건립을 명분으로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졌으며 시대는 혼탁해졌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어둠 속에서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중세 교회가 수백 년간 불필요하게 키워온 ‘가지’들을 쳐내는 일이었습니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모든 신앙인에게 직업 소명 의식을 심어주어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게 한 것입니다. 또한 지나치게 축적된 재산과 권력을 내려놓게 하고, 왜곡된 신앙관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바로 세우게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가지치기’였습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가지치기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에 지탄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가지치기하지 못해서입니다. 종교개혁 주일을 맞아 우리 주변부터 철저하게 가지치기해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날이 올 때 건강하고 풍성한 생명의 움을 틔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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