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종종 사건을 통해서 발전한다. 호주 원주민들도 1938년 호주 건국 150주년 기념행사를 계기로 사건을 통해서 권리를 주장했다.
당시 기념행사는 1월 26일부터 4월 25일까지 성대하게 열렸다. 시드니를 중심으로 영국함대 상륙 재현, 120대 이상의 이동 차량이 동원된 국가로의 행진 퍼레이드, 커먼웰스 게임이나 요트 경주 등의 대규모 스포츠와 문화행사, 군사 퍼레이드, 경찰 카니발, 전시회, 음악 공연 등이 이어졌다.
원주민들을 자극한 것은 영국함대 상륙 재현 행사였다. 1788년 1월 26일에 아서 필립(Arthur Phillip) 선장이 시드니 코브(Sydney Cove)에 상륙해서 영국 국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재현했다. 행사의 일부로 영국군을 보고 원주민들이 도망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 과정에서 강압적으로 원주민들을 대하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 논란이 되었다.
시드니 원주민들은 행사 참여를 거부했다. 정부는 뉴사우스웨일스 서부의 메닌디 수용소에서 원주민 남성 25명을 강제로 데려왔다. 정부 관리는 “행사에서 도망치는 원주민 역할을 하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식량 배급을 중단하겠다”고 이들을 위협했다. 더구나 행사 전날에 시드니에 도착한 이들은 레드펀 경찰학교 마구간에 갇혀 밤을 보냈다. 행사 당일, 영국군이 해변에 상륙하면 공포에 사로잡혀서 숲으로 도망치는 장면을 연기하라고 강요했다.
실제 역사는 달랐다. 영국 정부는 필립 총독에게 원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라고 지시했다. 원주민 에오라 부족은 거대한 배와 낯선 복장의 영국인들에게 경계심과 호기심을 동시에 보였다. 필립 총독은 원주민들에게 선물을 주고 호의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영국인 중에 상륙 직후에 원주민 정착지에 머물면서 함께 춤을 추었다는 기록을 일기에 남긴 이도 있었다. 원주민 베넬롱은 총독과 밀접하게 교류하기도 했다.
영국인과 원주민 사이의 갈등은 서서히 자라났다. 우발적인 충돌보다 자원과 땅에 대한 소유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에서 시작되었다. 영국인들이 땅을 개간하고 물고기를 잡자 에오라 부족은 자신들의 자원을 약탈한다고 생각했다. 그 해 5월에 낚시를 하던 죄수 2명을 원주민이 살해했다. 원주민들은 이들이 정당한 허가 없이 자원을 약탈했다고 여겼다.
1790년 필립 총독이 맨리 해변에서 원주민 전사가 던진 창에 찔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군이 원주민을 강제로 납치 감금한 일에 대한 보복이었다. 같은 해에 비다갈 부족의 전사 페멀워이가 필립 총독의 사냥지기를 살해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페멀워이는 이후 12년 동안 영국인 정착촌을 지속적으로 공격해서 저항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이런 초기 갈등은 이후 수십 년 동안 프런티어 전쟁으로 이어졌다.
영국인들과 함께 들어온 천연두, 성병, 인플루엔자, 홍역, 결핵 등의 질병도 원주민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남겼다. 상륙 직후인 1789년, 시드니 인근 에오라 부족에서 천연두가 발생했다. 면역력이 없던 원주민들은 이 질병으로 최소 50%, 최대 90%의 인구를 잃었다. 해안가에 시신이 방치될 만큼 피해가 처참했다. 원주민 사회는 부족의 장로나 지식 전수자들을 한꺼번에 잃고 원주민 전통문화와 언어가 단절되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영국군 도래 150주년이 원주민들에게 축하할 일이 아니라 애도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게다가 기념행사가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고 원주민들을 모욕하자 원주민들은 ‘애도의 날’ 저항을 통해서 권리를 주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변창배 목사
<전 총회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