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에세이] 성 금요일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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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아무 죄도 없이 오직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해 십자가를 지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신 날이다. 

자신의 외아들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나 모든 고통 다 참으시며 하늘 아버지의 큰 뜻을 이루시게 하려고 그 험한 길을 묵묵히 순종하고 몸을 내맡기신 예수님이나 그 사랑은 끝이 없다는 말 이외에 무어라 표현할 말이 없다. 우리 인간의 이기적 생각으로는 어떤 면으로 바라봐도 이해하기 힘든 일일 뿐이다. 그런 연고로 불신자들은 오히려 비아냥거림으로 그 큰 은혜의 빛을 가리려 한다. 

인과응보로 행실로 도덕으로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의 한계와 죄성을 막아내기 힘들기에 하나님은 결단하신 것 아니겠는가? 원죄가 지닌 죄성 때문에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우리 인간을 구원해 주시려고 아낌없이 외아들을 내주신 그 은혜의 날에 그 고마움만 묵상해도 부족할 텐데 여전히 일상을 따라가며 보낸 것뿐이다. 묵상하고 감사기도 드리다가도 어느새 머릿속은 일상으로 꽉 차버린다. 

그래 바로 이런 점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으로 엄청난 파격을 택하신 것이다. 생명을 내놓으시면서까지 가르치고 또 가르치신 절규를 오늘도 우리는 헌신짝 버리듯 내버리며 살면서도 아무 죄의식도 갖지 못하는 때가 훨씬 많다. 오리를 가자 하면 십리를 가주라고 하신 말씀을 들을 때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동을 받다가도 막상 도움을 청하는 이웃을 만날 때는 짜증이 먼저 올라오기 다반사가 아니던가. 멀리 갈 것 없다. 지하철에서 경로석에 약간 젊은 듯한 초로의 승객이 앉아 있으면 그 앞에 서서 공연히 그 사람을 속으로 눈흘기는 일은 없었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그 아픔을 가슴으로 느껴보려고 애쓰건만 금세 우리 마음은 부활과 구원 쪽으로만 기울고 그 행운의 반열에 들기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십자가의 고난이 있어야 그 후에 부활이 있는 것을 이성으로는 잘 알면서도 감정으로는 부활에 침을 흘리고 서 있는 것이 바로 나라는 사실은 아무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예수님, 아무 공로 없사오나 저도 아버지의 크신 구원의 역사 속에 포함시켜 주시옵소서.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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