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쥐덫 위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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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의 거장들은 음악이 가진 매혹적인 힘 뒤에 숨겨진 영적 위험을 끊임없이 경고해 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저서 『고백록』(제10권 33장)에서 음악이 주는 감동이 말씀의 내용을 앞설 때 느끼는 위기감을 이렇게 고백했다. “가사보다도 가사에 실린 선율에 더 마음이 감동될 때, 나는 형벌을 받아 마땅한 죄를 지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럴 때 나는 차라리 노랫소리를 듣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이 말씀의 통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순간, 그것은 신앙의 도구가 아니라 영혼을 기만하는 ‘죄’가 될 수 있다는 성찰이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예배 현장은 신학적 깊이가 거세된 가사와 요란한 악기 소리가 지배적이다. 

종교개혁자 칼뱅 역시 『기독교 강요』(제3권 20장 31절) 속에서 음악이 절제를 잃었을 때 닥칠 파멸을 경고했다. “만약 노래의 즐거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가사보다 선율에 더 마음이 쏠리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 음악은 영적으로 유익을 주는 범위 안에서만 허용되어야 하며, 그것이 말씀의 권위를 압도하거나 예배자의 분별력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칼뱅은 1543년 『제네바 시편가』 서문에서 더욱 간담이 서늘한 비유를 든다. 음악이 “깔때기를 통해 술이 술통 속으로 부어지듯, 독과 부패가 마음 깊숙이 흘러 들어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음악은 칼뱅의 경고처럼, “적절히 조절되어야 하며, 그것이 우리를 방종에 빠뜨리거나 연약하게 만들지 않고 오직 정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김에 이르게 해야 한다. 음악이 거룩하고 순수한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영국의 전 총리 마거릿 대처는 “공짜 치즈는 쥐덫 위에만 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 없이 감각적 선율에 의존해 얻는 감동은 쥐덫 위에 놓인 공짜 치즈와 같다. 그 대가는 감각의 덫에 갇힌 영적 분별력의 파산뿐이다. 

예배의 본질은 음악적 쾌감이 아니라 말씀 앞에 홀로 서려는 성숙한 분별력에 있다. 음악적 분위기가 만드는 집단적 감각에 의한 ‘값싼 은혜’의 유혹을 뿌리치고, 말씀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처절한 순종과 자기 성찰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예배자로 거듭날 수 있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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