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2년(세종 14년) 하교에 ‘각 관아에서 더러 감옥을 만들지 않고 경내의 죄인들을 다른 관아로 옮겨 가둠으로써 왕왕 죄수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데…
교정선교
[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근세사 (5)
[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근세사 (4)
제2절 감옥 설비 조선시대의 옥사의 양식, 구조 및 그 밖의 모양에 대해서는 이것 또한 문헌에 불충분해 상세하게 할 수 없다.…
[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근세사 (3)
이러한 직수의 제사는 각 그 권한에 따른 범인의 체포, 처분의 직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옥사를 설치하는 것이 인정되고 있었다. 또…
[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근세사 (2)
형조 관할의 소위 율학청(律學廳), 전옥서(典獄署), 장예원(掌線院), 보민사(保民司), 좌우 포청 (捕廳) 및 우순청(右巡廳) 등 6사가 있었고 그중에 우포청(右捕廳)인 관청은 모두 조선…
[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근세사 (1)
제1절 감옥관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태조 즉위 시 하교 중에 의장(儀章)과 법제(法制)는 첫 번째로 고려시대의 것에 따른다는 취지의 선언을 한 것에…
[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중고사 (7)
법제상 근거를 가지는 것은 없었지만 고려 형법에는 형벌을 태, 장, 도, 유 및 사의 5종으로 정했다. 이를 재래의 형벌과 비교하면…
[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중고사 (6)
죄인을 군사에 이용한 것은 그 수년 후에도 있었다. 즉 1284년(충렬왕 10년)에 왜구를 막기 위해 여러 도(道)에 유형수로 하여금 배를 타고…
[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중고사 (5)
1199년(신종왕 3년) 진주의 향리 정방의라고 하는 자가 반역을 꾀했다. 이에 앞서 정방의는 죄로 옥에 감금된 바, 그의 동생 창대(昌大)가 옥에…
[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중고사 (4)
사면이 빈번하게 행해진 결과로는 소위 사면을 함으로 한 것에 대한 폐단을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즉 사면을 실시해 죄수 전부를 석방하면 그때는…
[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중고사 (3)
오히려 그 장소에 대해서는 국가 초기부터 같은 위치였는지 여부는 판명되지 아니하지만 예종왕 무렵에는 남쪽 거리라고 하는 네거리에 있는 법사(형부)와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