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군사에 이용한 것은 그 수년 후에도 있었다. 즉 1284년(충렬왕 10년)에 왜구를 막기 위해 여러 도(道)에 유형수로 하여금 배를 타고…
교정선교
1199년(신종왕 3년) 진주의 향리 정방의라고 하는 자가 반역을 꾀했다. 이에 앞서 정방의는 죄로 옥에 감금된 바, 그의 동생 창대(昌大)가 옥에…
사면이 빈번하게 행해진 결과로는 소위 사면을 함으로 한 것에 대한 폐단을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즉 사면을 실시해 죄수 전부를 석방하면 그때는…
오히려 그 장소에 대해서는 국가 초기부터 같은 위치였는지 여부는 판명되지 아니하지만 예종왕 무렵에는 남쪽 거리라고 하는 네거리에 있는 법사(형부)와 같은…
전옥서는 995년(성종 14년)에 이르러 이름을 바꾸어 대리사(大理事)로 불렀으며, 평사(評事)라고 하는 관청을 설치하고 형무를 관장하도록 했다. 문종왕 때에 이르러 다시 고쳐…
고려시대 감옥은 초기에 있어서 태봉(泰封)의 제도에 의해 두어진 사법기관에 해당하는 의형대(義刑臺)의 관할이었다. 그 후 당의 제도를 모방해 백정(百政)의 개혁을 실시하고…
삼국 모두 역대 국왕이 죄수의 일을 걱정한 것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중요한 일로 여겼다. 천변지이(天變地異), 가뭄, 장마 그 밖의…
고구려에서도 ‘서기 25년(유리명왕 23년) 태자를 세우고 나라에 대사를 하였다.’ ‘372년(소수림왕 2년) 매우 더울 때 왕은 죄수 누계(縷繫)의 고통을 생각하여 평결을…
지금 예를 열거해 보면 신라에서는 ‘서기 71년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15년에 가뭄이 들어 서울과 지방의 죄수의 죄상을 살펴 사형에 처할 두 사람을…
중국의 감옥이 원형이었기 때문에 위지(魏誌)의 저자는 이를 비교 대상으로 선택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로써 직접적으로 부여의 감옥이 원형이었다고 추단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