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옥서는 995년(성종 14년)에 이르러 이름을 바꾸어 대리사(大理事)로 불렀으며, 평사(評事)라고 하는 관청을 설치하고 형무를 관장하도록 했다. 문종왕 때에 이르러 다시 고쳐…
교정선교
고려시대 감옥은 초기에 있어서 태봉(泰封)의 제도에 의해 두어진 사법기관에 해당하는 의형대(義刑臺)의 관할이었다. 그 후 당의 제도를 모방해 백정(百政)의 개혁을 실시하고…
삼국 모두 역대 국왕이 죄수의 일을 걱정한 것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중요한 일로 여겼다. 천변지이(天變地異), 가뭄, 장마 그 밖의…
고구려에서도 ‘서기 25년(유리명왕 23년) 태자를 세우고 나라에 대사를 하였다.’ ‘372년(소수림왕 2년) 매우 더울 때 왕은 죄수 누계(縷繫)의 고통을 생각하여 평결을…
지금 예를 열거해 보면 신라에서는 ‘서기 71년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15년에 가뭄이 들어 서울과 지방의 죄수의 죄상을 살펴 사형에 처할 두 사람을…
중국의 감옥이 원형이었기 때문에 위지(魏誌)의 저자는 이를 비교 대상으로 선택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로써 직접적으로 부여의 감옥이 원형이었다고 추단할…
대체로 당시 고구려 지방의 사정은 행정사무가 간단하게 시행되었고 범죄에 대해서도 소위 그 자리에서 결정해 처리하는 주의로 임해, 죽여야 하는 자는…
부여와는 다른 민족인 고구려족이 있었던 지방에서는 ‘형법은 모반하고 반역한 자는 먼저 태워 죽인 뒤에 머리를 베고 그 집의 재산을 몰수하며,…
교정선교를 진행하며 ‘월간교정-교정 포커스’에 게재된 교도소연구소 금용명 소장의 논문을 접하고 이를 참조 및 재구성해 서술한다. 여기서 상고사는 상고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를 다룬다.…
이 글에서는 ‘묻지마 범죄’에 대해 경찰, 검찰, 법원, 교정, 보호(보호관찰, 소년보호) 등의 형사사법기관들이 어떻게 접근하고 대응하는지에 대해 조사 연구하고,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