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쉼터] 가을이 저만치 걸어가네

Google+ LinkedIn Katalk +

금년은 재앙의 해라고 역사에 남을 코로나 사태가 지난 2월에 시작되면서도, 초창기에는 비록 무책임한 공무원들의 무대책적인 방역 활동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인 의료인들이 국민들과 호흡을 맞춰 방역에 힘쓴 결과 세계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는 방역으로 난관을 잘 헤쳐나갔다. 이렇게 가슴 죄며 봄여름을 지내면서 이제 여름이 오면 더위에 약한 코로나도 그 기세를 멈추고 다시금 예전의 세월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지내면서, 근래에 상상치도 못했던 엄청난 장마와 태풍도 이를 악물고 견디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이 무서운 병마가 우리들에게서 멀어져 갈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보았지만, 새롭게 변조된 코로나는 우리를 더욱 옥죄는 무서운 기세로 엄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면역을 갖추었다고 자신감 속에서 새로운 내일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런 중에도 어김없이 계절은 바뀌어 가을이 찾아왔다. 사실 근 60여 년 전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때는 낙엽이 떨어지는 캠퍼스에서, 친구들과 함께 프랑스 시인 구르몽이 지었던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같은 시를 함께 읊으면서 낭만을 구가했고, 이브 몽땅이 불러 유명한 ‘낙엽’같은 샹송이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같은 팝송, 거기에 박목월 시인의 시에 김성태가 곡을 부친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라고 애잔하게 불리었던 ‘이별의 노래’같은 가곡들을 부르며, 젊은 날의 낭만을 느끼기도 했다. 사실 우리에게는 4계절이 뚜렷하게 있지만 그중에도 가을이 우리를 시인이나 철학자로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흔히 봄은 여성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고 하나 보다. 더욱이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을의 하늘은 새파랬고 공기는 우리의 폐를 씻어주듯 맑고 깨끗했다. 이런 자연 풍광이나 여건이 우리가 느끼던 가을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가을의 하늘은 잿빛이었고, 혼탁해진 공기는 가슴을 더럽히기도 우리의 눈을 따갑게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 덕분인지 금년에 맞이하는 가을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예전의 가을 그 자체였기에 그나마 지금의 가을로 위로를 삼을 수 있다고 여겨본다.

우리의 1년은 4계절이 분명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의 태양으로 곡식이 성장하고 가을엔 추수하면 겨울은 쉬면서 내년을 예비하는 생활이 예로부터의 생활 풍습이었다. 그러기에 가을에는 추수에 대한 감사를 느끼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반성도 하면서 다가오는 겨울에 대비하며 장래도 계획하는 생활 패턴을 유지하기도 했다.
어느 날 불현듯 불어오는 서늘한 가을 바람에 ‘가을이 왔나’라며 돌아보니 온 나라가 단풍에 휩싸였다. 틀림없이 백두산부터 시작되는 단풍이겠지만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는 없이 겨우 38선을 경계로 보이는 산을 물들기 시작한 단풍만은 철저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천천히 남하해서 이제는 금년의 종지부를 지르고 내년을 기약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의 방해로 직접 그 절경에 다가서지는 못해 영상을 통해서 아쉬움을 달랬지만 온 산을 불태우듯 울긋불긋 단장하던 단풍은 어느덧 낙엽으로 변하면서 코로나의 시름과 병균마저도 함께 짊어지고 떠난다면 이 또한 진정 우리에게 다정한 절기이리라. 그런 마음으로 휘둘러보니 어느새 아쉽게도 가을이 우리 곁을 떠나 저만치 걸어가고 있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