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94세의 천사의사, 한원주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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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주 씨는 1926년 경남 진주에서 의사 한규상 씨와 독립운동가 박덕실 씨 두 분 슬하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권고로 당시에 여성으로서는 좀처럼 선택하기 어려운 의사가 되기 위해 경성의학여자전문학교(→수도의과대학, 現고려대 의대 전신)를 1949년 졸업하고 같은 해, 물리학자 남편을 만나 결혼, 남편이 도미유학을 떠나게 되자 동행하여 미국 시카고에서 인턴 과정을 마치고 내과전문의가 되어 10년간 내과의사로 일하다가 귀국, 개업의로 활동하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암송하게 하는 등,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아 돈독한 믿음 가운데 성장하였다. 그런데 1978년 남편이 별세하면서 한원주 씨는 삶자체에 대한 회의로 고뇌하였다고 고백한다. “돈도 명예도 죽으면 그만”이니 그 이상의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하기 위해 날로 번창하던 병원의 문을 닫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진료소’를 운영하게 된다.
2008년 이윽고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매그너스 요양병원』에 초빙되기에 이른다. 자신의 저서『백세 현역이 어찌 꿈이랴』를 통해서 “어르신들이 끝까지 기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의 의무”라고 자신의 소망과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요양병원에서 30년을 하루같이 근속, 94세의 호호할머니가 되어 현역으로는 국내 최고령의 의사가 되었다.
요양병원에서『닥터 한』의 공식 직함은 ‘내과과장’인데 모두가 그를 ‘원장님’으로 부른다. 그녀는 병원 당국이 ‘명예원장’을 제안하였으나 한사코 사양하면서 “그런 거 관심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의료진 및 환자들은 90대 고령으로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그를 존경하는 뜻에서 자연스레 ‘원장님’으로 불렀다.
한 원장은 거동이 가능한 환자들을 자주 요양병원 로비에 모아놓고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게 했으며 우리 동요 ‘고향의 봄’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찬송도 함께 불렀다. 평균나이 70이 넘은 치매환자들이 대다수인 요양병원에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평소 그는 환자들이 육신 뿐 아니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아서 이들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육신과 영혼, 경제적인 면도 돌보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그가 평생 동안 헌신한 삶을 인정받아 2017년 제5회《성천상(星泉賞)》을 수상하였다.《성천상》은 JW중외제약의 창업자 故성천(星泉) 이기석 선생의 생명존중 정신을 기리며 음지에서 의료봉사활동으로 사회에 감동을 주는 진실된 의료인을 격려하기 위해 2013년 제정된 상이다. 당시 한 원장은 상금으로 받은 1억원을 모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였다.
한원주 할머니 의사는 매일 오전 병실을 돌며 환자를 회진한다. 회진이 끝나면 사무실에 돌아와 컴퓨터 파일을 열고 속도는 느리지만 정확한 솜씨로 환자 개개인의 증세와 치유 상태를 입력한다. 94세의 할머니로서는 믿기지 않는 체력과 왕성한 에너지로 하루하루를 소화하는 모습이 참으로 놀랍다. 낮 시간에는 중환자들을 찾아 상태를 점검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며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등 찬송을 불러준다.
주중에 병원근무를 마치고 주말에는 경기도 성남시 부근에 있는 자택으로 퇴근하는데 대중교통을 네 번이나 갈아탄다. 병원을 출발하여 2시간 반 이상 걸려 집에 도착한다. 둘째 따님이 함께 사는데 “이제 활동을 그만하시라”는 따님과 “아직은 괜찮다”는 고령의 엄마 사이에 자주 ‘아름다운 입씨름으로 승강이’가 벌어진다.
“94세의 천사의사, 한원주 할머니”가 지난 9월 30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지난 9월 10일 숙환으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하기 직전까지『닥터 한』할머니는 변함없이 환자를 돌봤다. 아산병원에 입원하기 사흘 전인 9월 7일 기록 차트엔 10명의 환자를 돌본 기록이 남아있다. 천사할머니는 아산병원에서 퇴원하여 9월 23일『매그너스 요양병원』으로 귀환하였다. 당신이 선택한 마지막 일터에서 눈을 감기 위해서였다. 마지막 운명(殞命)의 시간에 그의 침상을 지킨 가족과 동료들에게 그가 남긴 말은 “힘내라, 가을이다, 사랑해!”의 세 마디였다고 한다. 아, 어느 세월에 우리는 이런 천사의사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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