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수상] 견제와 균형의 원칙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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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온센서라면 보온만 철저히 해 주면 그 기능을 완성한 것이므로 생산 과정을 파격적으로 줄인 제품을 만들 수도 있고 대체품을 사용할 수도 있다. 당연히 A를 통해 A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A-1, A-2를 만들어 내는 재미있는 과정들이 파생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래도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내가 개입 할 때가 많았다. 공학을 전공한 덕분에 원리와 이론을 이해하는 폭도 빨랐고 무엇보다 회사를 대표하는 경영인이자 엔지니어이니 잘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론 연구 개발 과정에서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수도 있다. 원리에 대한 난상토론을 좋아하는 대표와 토론에서 이겨야(?) 실제 개발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백분 이해하지만 나로서는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엔지니어들과 오히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견해차를 좁혀나갈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우리 회사에서 개발하는 부품이 압출품을 비롯한 히터와 센서, 전자회로 제품 등 100여 종류로 늘어갈 수 있었고, 이 부품들은 냉장고, 에어컨을 비롯해 비데, 공기청정기 등 거의 모든 가전제품에 사용되고 있다. 제품 다양화와 다변화는 엔지니어 CEO로서 직원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하는 원칙이다. 관리적인 면에서는 가능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견제와 균형은 기업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CEO는 끊임없이 조직을 관리하고 체크해야 한다. 생산 과정에 문제는 없는지, 경영상 허점은 없는지 체크하며 견제하는 마음으로 조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 한편으로 일과 근무 여건 등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잘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을 이끌어가면서 나는 조직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으면서 자유롭게 일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창업 10년 차를 지나 199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자 성장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국내 여러 곳에 공장을 지어야 했다. 1988년 인천공장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1993년엔 광주와 창원에 공장을 열었다. 그러다가 2년 뒤 인천공장을 남동 1,2공장으로 건축해 통합하면서 생산 라인이 급성장하게 되었다. 우리 제품이 국내 업체뿐만 아니라 해외 업체에도 들어가면서 수출의 길이 열렸고 그 뒤로 빠른 성장세로 돌아선 것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고 꿈같은 일이었다. 다만 곳곳에 공장을 세우고 가동하다 보니 그 모든 곳을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몸은 하나인데 전국에 세워진 공장을 돌아보며 일일이 체크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고 그때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떠올렸다.
‘사장이 매일 여기저기 다니며 확인한다고 생산량이 늘지 않는다. 조직이 크면 클수록 한눈에 조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때부터 나는 폼 만들기에 돌입했다. 어디에나 폼은 존재한다. 제품을 계약하다 보면 쓸데없이 복잡하고 난해한 폼을 볼 때가 있다. 그때마다 답답한 생각이 들곤 했기에, 나는 우리 회사의 폼은 무엇이든지 간편하게 만들기로 했다. 특히 무창고주의를 추구하는 회사로서 다품종 소량 생산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면서 모든 공장의 자료를 전산화하여 매일매일 체크할 수 있도록 했다. 매일 얼마나 주문이 들어오고 얼마나 나가는지, 재고는 발생하지 않는지, 재무적으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지 체크했다.

강국창 장로
• 동국성신(주) 대표이사
• 가나안전자정밀(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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