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의소리] 소리가 문화에 끼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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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농인이 청인과 다른 문화에 산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느끼지 못한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대부분의 청인들은 농인과 별 관계가 없고 또 일생 동안 살면서 농인과 접할 일도 그리 많지 않다. 예전 같으면 농인이 있는지 없는지 별로 인식하지도 않고 살아왔는데 최근 텔레비전에 수어 통역하는 것이 보이고 수어통역사들이 행사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농인들의 삶을 조금씩 들여다보곤 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농인이 뭐가 다른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를 보는데 그 이유 중에 대표적인 것은 외견상 보기에 별 장애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반인들의 일상 중에서 소리를 한 번 빼놓으면 어떠한 상황이 전개되는가 가정해 보자. 우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그 이유는 대개의 경우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은 알람을 설정해 놓고 자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은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지정을 해 놓고 자기도 한다. 자명종이 없는 세상에서는 어떻게 아침에 정한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까? 둘째로는 자동차로 출근하는 사람의 경우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의 뉴스를 듣든지 날씨를 듣든지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감상하며 운전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전철로 출근하는 경우도 스마트폰을 켜 놓고 위와 같이 듣든지 아니면 유튜브를 들으며 또는 영어 회화 공부를 하며 시간을 아껴가며 뭔가를 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책을 볼 수도 있는데 예전에 비해 책을 보는 사람도 줄었고 또 시끄럽게 통화를 하는 사람들도 전철 안에서 보기가 힘들어졌다. 직장에 가면 회의도 해야 하고 거래처에 전화도 해야 하고 또 동료들과 이야기도 하며 지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소리라는 매체를 통해서 하는 것을 청인들은 간과하고 지내고 있다.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도 출근 때의 상황이 반복된다.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 번호키를 누르고 문을 여는 경우는 별 문제가 없고, 초인종을 눌러야 하는 경우라도 안에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농인 가족이 있어서 문을 열어 주어야 하는 경우는 다른 장치가 있어야 한다.

경광등이라고 하여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고 불이 번쩍이며 밖에 누가 온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장치도 있다. 청인들에게는 별로 신경이 안 쓰이는 사소한 일도 농인에게는 소리 외에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즉 보이는 문화 다시 말해 농문화는 전달방식이 다른 채널을 통해 형성된 독특한 문화이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리가 배제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상황을 먼저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며 소리가 없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며 그들에게 어떠한 조건이 가장 의사소통에 적합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당연히 교실도 밝아야 하고 수어통역을 하는 경우라면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토대 위에 보다 전문성 있는 사항이 고려될 때 그들의 문화가 꽃피울 것이다. 도서관, 연극, 뮤지컬, 수어시 등이 외국에 많이 보급되고 있는 것을 보며 우리나라 농문화에 대한 투자가 너무 열악함을 청인들이 인식하여 새해에는 보다 다양한 농문화를 전개할 수 있는 기관과 장소가 늘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농인을 위한 도서관으로 영롱 농문화 도서관의 개관은 농사회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리라 생각된다.

안일남 장로<영락농인교회·사단법인 영롱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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